“일제는 망한다”는 안중근 의사의 기개가 담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이 20일 처음으로 일반 시민에게 공개된다. 올해 8월 경기도와 민간 탐사팀이 협업해 환수한 이 유묵은 안 의사가 여순감옥 등을 관장하던 일본제국 관동도독부 고위 관료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진다. 유묵은 죽기 전 남긴 글씨나 그림을 이른다.
안중근 의사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 경기도 제공 2일 경기도에 따르면 폭 41.5㎝, 길이 135.5㎝ 크기의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큰 소리로 길게 탄식하며 일본의 멸망을 미리 조문한다’는 뜻을 담았다. 죽음을 앞두고 흔들림 없던 안 의사의 기개와 역사관, 세계관이 오롯이 담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안 의사가 명주천에 쓴 작품으로 수결란에는 손도장과 함께 ‘일천구백십년 삼월 동양지사 대한국인 안중근 여순옥중서’라고 적혀 있다. 순국일인 1910년 3월26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관료의 후손이 일본에서 보관해 오던 것을 2000년 4월 국내의 한 민간 탐사팀이 발견했고, 귀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올해 초 경기도가 힘을 보탰다.
안 의사 순국 이후 115년, 유묵 발견 뒤 25년 만에 귀환한 셈이다.
유묵 환수에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소유자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멸망을 외친 안 의사의 유묵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극우파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상황 탓이다.
국내에 공개된 바 없는 이 유묵은 도의 민간자본보조(24억원)로 광복회 경기도지부에서 구매했다. 현재 경기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도는 20일 경기도박물관 아트홀에서 유묵을 공개하고 내년 4월까지 특별전시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약 200편의 유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유묵은 60여점이며 이 중 31점이 보물로 지정돼있다.
안중근 의사 유묵 ‘독립’. 경기도 제공 도는 ‘장탄일성 선조일본’과 함께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유묵 ‘독립’(獨立)의 일본 소장자와도 반환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향후 경기도는 안 의사 고향인 황해도 해주와 가까운 DMZ 지역에 ‘안중근평화센터’를 건립해 기념사업과 유묵 발굴·수집·전시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