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 급변동 이후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하는 글로벌 사모펀드 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에 거래 위축과 유동성 악화의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에 자산가들의 자금을 유치한 '에버그린 펀드'가 만기가 없고 수시로 자금을 넣고 뺄 수 있는 장점으로 시장에 새 유동성을 불어넣고 있다.
허윤혁 한국투자공사(KIC) 사모주식실장은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경제 대체투자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허 실장은 대체투자 시장은 현재 운용자산 규모가 12조달러(약 1경6553조원) 규모로 올랐지만 2023년 이후 자금조달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202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급속히 올리면서 주가가 급락하고, 자산 매각이 어려워지면서 거래가 줄었다"며 "펀드의 투자대비분배금(DPI)이 낮아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의 회수가 어려워지고, 결국 유동성이 악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동성 악화 악순환…마르지 않는 '에버그린 펀드' 부상
이같은 상황에서 개방형 펀드가 새로운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명 '에버그린 펀드'다. 전통적인 사모펀드는 일정 기간 투자금을 모은 뒤 투자→회수→청산의 주기를 거친다. 유한(有限)한 수명을 가진 셈이다. 이와 달리 에버그린 펀드는 정해진 만기(청산 시점)가 없거나 일반 펀드 대비 무척 길게 설정돼 있다. 투자자들이 정기적으로 자금을 추가 납입하거나 인출도 가능하다. 펀드가 한 번 설정되면 계속 굴러가면서 자금이 순환, '상록수(evergreen)'처럼 늘 지속되는 구조다.
에버그린 펀드는 주로 자산가들의 자금으로 유치해 굴러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규모는 적지 않으면서도 기관투자자 전용 펀드만이 아닌 '리테일 펀드'의 성격을 지닌 셈이다. 이미 해외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중심으로 이런 리테일 자금 유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허 실장은 "대체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전체 자금 규모는 기관투자자 자금 규모와 큰 차이 없지만, 포트폴리오 중 대체자산 비율은 기관이 23% 수준인 반면 리테일 투자자들은 3% 수준으로 크게 뒤떨어진다"며 "대체투자 비중이 확대되면서 앞으로 대체 시장에 대한 영향력도 매우 커질 것이라 판단해 대형 운용사들도 적극적으로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컨더리딜·NAV파이낸싱도 확대…운용사도 AI 수혜
에버그린 펀드의 성장세는 사모펀드(PEF)끼리 거래하는 '세컨더리 딜' 확대 추세에 맞물려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요소로 기대받고 있다. 허 실장은 "올해 상반기는 세컨더리 시장 역사상 최대 거래 규모를 기록했고, 연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 조달 환경이 어려운 가운데 운용사들은 DPI 개선, 기존 출자자(LP)에 유동성 제공, 향후 자금조달 동력 확보를 목적으로 세컨더리딜이나 펀드 만기 시점에 새 펀드를 설정해 투자 기간을 연장하는 컨티뉴에이션 비히클(CV) 거래가 적극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확대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은 순자산가치(NAV) 기반 파이낸싱이다. PEF 운용사들이 포트폴리오 기업에 투자한 펀드 자산을 기초로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이다. 개별 기업 대상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것과 달리 포트폴리오 단위로 분산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리스크를 줄이고 자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허 실장은 "시장 이자율 스프레드 감소에 따라 NAV 파이낸싱 비용도 줄어든다"며 "일부에서는 NAV 파이낸싱이 2022년 1000억달러 규모에서 2030년에는 7000억달러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밝혔다.
한편 대체 투자 시장에도 부는 인공지능(AI) 열풍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허 실장은 "AI 발달에 따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는 부동산(RE)은 물론 인프라 투자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며 "피투자 회사에뿐만 아니라 사모펀드나 기관투자자에도 실사를 효율화하거나 투자 기업의 영업 효율이나 자산 가치 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