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소송 주의보]③창업자 지키는 투자 계약서 작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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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소송 주의보]③창업자 지키는 투자 계약서 작성법
편집자주미국과 이스라엘 등 벤처 선진국에서는 창업 실패가 오히려 '경험치'로 인정돼 재도전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실패가 창업자 개인에게 낙인처럼 작용하고, 재기의 길마저 막아서는 구조다. 특히 투자계약에 따라 스타트업 법인뿐만 아니라 창업자가 개인 재산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소송 리스크가 치명적이다. 최근 국내에서 진행된 스타트업과 투자사 간 소송 사례, 계약서 독소조항 회피 요령 등을 3회에 걸쳐 분석해 본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소송 등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길은 투자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는 데서 출발한다. 투자자와의 계약은 사업 확장과 자금 조달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동시에 창업자에게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부과한다. 투자 유치에 몰두한 나머지 불리한 조건에 섣불리 서명할 경우, 창업자에게 지나친 법적 책임이 돌아갈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계약서에 '창업자가 스스로 귀책 사유가 있을 때만 책임을 진다'는 식의 명확한 책임 한정 조항 포함을 핵심 대응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창업자에게 실수나 경미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까지 무분별하게 책임을 물리려 하는 관행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자 괴롭히는 풋옵션, 책임 한정이 핵심

신주인수계약은 창업자가 특히 주의해야 할 계약 중 하나다. 회사가 주식을 새로 발행하고 투자자가 회사에 주식 대금을 납입해 투자할 때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계약으로, 한국에서는 회사와 투자자뿐 아니라 창업자 등 '이해관계인'까지 신주인수계약 당사자로 포함시키는 관행이 있어 계약서 각 조항 검토에 신경 써야 한다.


대표적으로 신주인수계약서의 주식매수청구권, 즉 풋옵션 조항은 창업자가 과중한 책임을 떠맡게 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이다. 풋옵션은 계약서에 규정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가 회사나 이해관계인에게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을 정해진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주로 투자자가 투자 손실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상법상 회사가 직접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고 있어 사실상 풋옵션 부담이 창업자 개인에게 집중되는 사례가 많다.


스타트업·인수합병(M&A) 전문 안희철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는 "현재 창업자 개인을 대상으로 연대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지만, 풋옵션 요구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미비하다"며 "창업자에게 귀책 사유가 없거나 경미한 위반일 경우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창업자는 자신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매수 의무를 부담하도록 조항을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투자자가 회수(엑시트) 안전장치로 계약서에 넣는 기업공개(IPO) 의무조항도 놓쳐서는 안 된다. IPO 불발 이후 손해배상 소송이 스타트업은 물론 창업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문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계약 단계에서 IPO 추진 의무를 '최선의 노력 의무' 수준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최근 IPO 자체가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시장 상황 등 외부 변수에 따른 불가항력적인 사유를 명확히 규정하거나 IPO 대신 M&A, 구주 매각 등 대체 방안을 인정하도록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영권·지분율 방어하려면…구체적 제한 필요

창업자 지분율과 경영권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조항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투자자가 자신의 지분 희석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서에 넣는 리픽싱 조항이 대표적이다. 리픽싱은 투자자가 보유한 전환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전환가격'을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조항이다. 예를 들어, 회사 실적이나 주가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투자자의 전환우선주 전환가격을 낮춤으로써 더 많은 보통주로 바꿔주는 것이다. 이는 창업자 지분율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전환가격 관련 조건과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조기상환청구권도 마찬가지로, 계약 위반이나 실적 미달 등 특정 조건하에서 투자자가 회사나 창업자에게 투자금 조기 반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회사의 현금 흐름 악화와 창업자의 경영권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조건이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하면 언제든 창업자에게 상환 부담이 돌아갈 수 있어 반드시 '중대한 계약 위반' 등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일부 투자자들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특별상환권 조항을 계약서에 삽입하려 할 수 있다. 특별상환권은 회사에 배당가능이익이 없는 경우에도 상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인데, 이는 상법상 불법이므로 계약서 초안에서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계약서 말미에 기재되는 위약벌 조항 역시 주의 대상이다. 이는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약속을 어길 경우 상대방에게 약정 금액을 배상해야 할 책임을 규정한 금전적 제재다. 상대방이 입은 손해는 물론 지연이자, 소송·자문 비용까지 모두 청구될 수 있다. 안 변호사는 "위약벌조항의 적용 대상과 상황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한해야 한다"며 "위약벌 조항 자체를 계약서에서 빼거나 고의·중대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책임을 부담하도록 창업자가 협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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