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간 노벨 과학상의 흐름은 명확한 방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초미세 세상으로 향하는 활주로를 만드는 기술이다. 2022년 양자정보과학, 2023년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 기술, 지난해 단백질 합성과 올해 분자기계 연구까지 나노(Nano)세상을 파고들어 생명 시스템을 해석하고 편집하는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 물질에서 정보로, 정보에서 생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는 단순히 의학의 진보가 아니다. 의료, 제약, 식품산업 전반의 경제적 판도를 다시 짜고 있다. 생명과학은 이제 '산업'이 아니라 '플랫폼'이 됐다. 인간의 세포, 유전자, 단백질이 인공지능(AI)의 데이터 군집으로 편입되면서, 생명정보는 새로운 원유가 되고 있다. AI는 인간의 생명 데이터를 해석하고, 진단·예측·설계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생명의 알고리즘'으로 진화 중이다.
10년 후, 인류는 'AI와 생명과학의 결합'이라는 거대한 시너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AI는 빅데이터를 통해 생명현상을 예측하고, 생명과학은 그 결과를 현실로 구현한다. 이 둘의 결합은 마치 18세기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촉발한 것처럼, 21세기 경제를 재편할 핵심 동력이다. AI가 두뇌라면, 생명과학은 육체다. 디지털지능이 생명 시스템과 결합할 때, 인류는 '지능의 산업혁명'을 넘어 '생명의 산업혁명'에 진입한다.
2050년이면 세계 인구는 100억명에 평균수명은 100세를 넘기고 우리 인구의 평균수명은 환갑이라는 슈퍼 고령화에 이른다. 인구와 수명의 곱은 '1兆歲(조세·TrillionEra)'라는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다. 의료·제약·식품·보건 산업이 단순한 복지의 영역을 넘어, 국가경제의 주축이 되는 이유다. 에너지·철강·전자·정보통신으로 이어진 산업 발전의 역사에서, 이제 '생명과학입국'이 그 바통을 이어받을 시점이다.
경상도 면적의 네덜란드가 미국 다음, 농업수출국 2위가 된 비결이 여기에 있다. 토마토의 종류만 630종이 넘고 이 중에는 당뇨, 망막신경 치료용 토마토 등 에너지를 비롯해 약용 식품이 대부분이다. 그 씨앗 1g의 가격이 금 1g에 해당한다. 네덜란드의 와게닝겐 대학은 최고의 유전자 편집기술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은 이미 정보통신입국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고비용 구조와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력 위축은 불가피하다. 지금 필요한 건 '생명과학 중심의 경제 전환'이다. 바이오 데이터센터, 유전체 빅데이터, 식품 바이오 혁신, 장수산업 등은 새로운 수출 엔진으로 떠오를 것이다. 생명과학을 산업의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8년, 21세기를 'Biological Century', 즉 생물학의 세기로 선언했다. 디지털이 인간을 확장했다면, 이제 생명공학은 인간 자체를 재설계한다. DNA는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니다. AI는 인간의 유전정보를 이해하고, 치료하고, 나아가 재창조할 수 있다. 이 흐름을 산업의 관점에서 읽지 못한다면, 20세기형 제조 논리에 갇힌 채 다음 세대의 경제 엔진을 놓칠 것이다.
이제는 '데이터 대항해 시대'를 넘어 '생명 대항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생명정보는 새로운 바다이고, AI는 그 항로를 개척할 항해지도다. 한국이 '생명과학입국'을선언할 때, 그것은 단지 의료 강국이 아니라 인류의 생명주기를 설계하는 국가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생명과학과 AI의 융합은 기술혁명이 아니라 문명전환이다. 따라서 의대 정원도 의사의 수요공급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생명과학입국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윤종록(KAIST 겸임교수,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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