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의 당적이 다를 경우 예산 불용률은 높고 집행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단체의 정치·경제 여건이 상위 (중앙·지방)정부의 정책 기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 기초자치단체장의 예산 불용률은 진보 성향에 비해 높았다. 18일 최정열 서정대 교수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발간하는 계간지 ‘지방행정연구’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특성과 예산 집행’에 따르면 2006∼2023년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전체 예산 불용률 평균은 9.9%, 예산 집행률은 84.2%였다. 예산 불용률은 예산액 대비 지출되지 않고 남은 예산(불용액)의 비율을 의미한다. 불용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예산이 계획대로 집행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최 교수가 서울 구청장들의 정치적 이념 성향에 따른 예산 불용률과 집행률을 분석한 결과 보수 성향은 평균 11.耳%의 예산 불용률을 보인 반면 진보 성향 구청장은 9.0%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집행률에서도 차이를 보여 보수 성향 구청장의 경우 평균 82.6%였으나, 진보 성향은 85.2%로 약 2.6%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보수 성향의 자치단체장이 비교적 사회복지 정책보다 개발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최 교수는 “사회복지 예산은 대부분 의무지출로 불용액이 적어 집행률이 높은 반면, 개발 정책은 비교적 장기적 사업으로 사업의 집행 및 추진에 어려운 측면이 있어 불용액이 많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기초와 광역 단체장의 당적이 같거나 다를 때 불용률과 집행률도 살폈다. 그 결과 구청장과 서울시장·대통령의 당적이 다를 경우 예산 불용률은 10.3%로 나타나 일치할 경우(9.1%)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구청장과 시장·대통령의 당적이 모두 일치하는 자치구는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예산 불용률이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정부와 동일한 정당에 소속된 구청장은 의도한 대로 정책을 제때 수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서울시장이나 대통령의 정당이 교체될 경우 정책적 충격을 유발하거나, 시장이 도시 전체의 대규모 계획을 추진하면 각 자치구의 예산이 일괄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초선 등 연임하지 않은 구청장의 예산불용률은 10.8%로 연임한 곳(9.7%)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임한 자치구의 경우 정책의 일관성·연속성 확보로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올라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구청장과 과반 지방의회의 당적이 일치할 경우에는 불용률이 10.0%를 기록해 불일치했을 때(9.4%)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최 교수는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처럼 예산 집행의 정치성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예산 집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자체장의 다양한 정치적 특성과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