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의 창]정가로 문화를 즐길 권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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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의 창]정가로 문화를 즐길 권리를 지켜라

한 장의 티켓을 손에 넣는 순간, 전쟁은 시작된다. 예매가 열리기 무섭게 수많은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인기 콘서트의 좌석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다. 몇 분 뒤, 같은 표가 온라인 암시장에서 몇 배의 가격으로 되팔리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표 전쟁'은 K팝 콘서트는 물론 프로야구, 뮤지컬, 각종 스포츠 경기로까지 번졌고, 암표는 그 전쟁의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암표상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예매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든다. 수십, 수백 개의 가짜 계정으로 좌석을 선점한 뒤, 이를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비공식 커뮤니티에서 웃돈을 붙여 되판다. 정가 15만원짜리 콘서트 티켓이 100만원까지 치솟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 사이 진짜 팬들은 정가로 문화를 즐길 기회를 잃는다. 공연장은 관객의 열정이 아닌 투기꾼의 손익 계산으로 채워지는 셈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암표 근절 방안으로 '신고 포상금 제도'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암표 수익의 최소 10배 이상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그중 10%를 신고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제도만 보면 강력해 보이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암표 거래가 대부분 온라인과 해외 플랫폼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첫 번째 한계다. 서버가 해외에 있거나 개인 간 직거래 형태로 이뤄지면 단속은 사실상 어렵다. 게다가 암표를 사려는 수요가 존재하는 한 공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소비자 심리가 암표 시장을 유지시키는 또 하나의 축이다.


올해 초 대만 정부는 암표 판매를 '사기 행위'로 규정하고 형사 처벌을 강화했다. 일본은 2019년부터 '입장권 불법 전매금지법'을 시행해 비정상적 재판매로 얻은 이익에 대해 최대 1년의 징역이나 100만엔(약 95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 역시 '티켓 재판매 플랫폼' 규제를 강화해 거래 이력 공개를 의무화했다. 이들 사례의 핵심은 매크로 차단, 실명제 강화, 플랫폼의 공동 책임이다.


우리 역시 기술적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 예매 플랫폼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불법 거래를 방조한 플랫폼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연대책임제' 도입이 필요하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실시간 탐지·차단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하지만, 문제는 예매 시스템 운영사의 투자 의지다. 예매 사이트는 '속도전'을 강조하며 홍보하지만, 그 구조 자체가 오히려 암표상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정부의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티켓 판매 단계부터 인공지능(AI) 기반 부정 거래 탐지 시스템을 적용하고, 1인 1좌석 실명 예매와 현장 본인 확인 강화 같은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 스스로 '암표는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불법 시장의 수요를 끊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결국 '사지 않는 것'이다.


공연과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문화의 축제이자, 공동체가 함께 호흡하는 공공의 장이다. 암표는 그 문을 가로막고 문화를 '돈으로 사는 특권'으로 전락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속만이 아니다. 정부·플랫폼·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공정한 문화 생태계다. 암표와의 전쟁은 곧 '공정한 기회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며, 그 싸움의 승리는 정가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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