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2024년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의료비는 급증하고 만성질환은 일상화되며, 기존 제도의 보완만으로는 고령화의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사회 전반의 정책 기반을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그 핵심이 바로 보건의료 빅데이터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전략으로 채택하면서 본격화됐다. 2019년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국가바이오 빅데이터, 임상데이터, 신약 후보물질, 바이오특허, 공공기관 데이터 등 5대 플랫폼 구축이 제시되며 국가 데이터 거버넌스의 기틀이 마련됐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속도가 다소 늦어졌던 사업은 현 정부 들어 다시 핵심 국가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가 빨라질수록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가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고령층은 복합·만성질환이 많아 장기 관리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건강정보와 의료이용 데이터를 통합 분석할 기반이 필요하다. 빅데이터는 질병 위험을 조기 탐지하고, 지역별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건강상태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도록 돕는다. 이는 고령화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고 국민 건강수명 연장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건강 100세 시대를 현실화하는 정책적 역량 역시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건강수명 늘리는 길, 데이터에서 찾아야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산업적 가치도 크다. AI 의료기기, 디지털헬스, 신약개발, 정밀의료 등 미래 바이오헬스 산업은 고품질 데이터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단일 건강보험 체계와 높은 의료 IT 수준을 가진 한국은 데이터 표준화와 연계가 강화될 경우 세계적으로 드문 통합형 헬스데이터 국가로 도약할 잠재력이 있다. 이는 기술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이끌 중요한 기회다.
하지만 데이터 활용 환경에는 여전히 여러 제약이 남아 있다. 병원 간 데이터 표준 불일치, 공공·임상·유전체 데이터 간 단절, 연구자·기업의 복잡한 활용 절차 등이 대표적이다. 데이터가 쌓여도 활용되지 못하면 국가전략은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합·표준화·활용 체계의 실질적 고도화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필수지만, 과도하게 강화된 규제는 오히려 데이터 활용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이미 마련된 가명정보 활용, 안전한 분석환경, 투명한 관리체계를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운영한다면 보호와 활용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고령화 대응과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신뢰 기반의 합리적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합리적 규제 혁신과 속도전 긴요
향후 정책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공공·병원·유전체 데이터를 연결하는 국가 통합 헬스데이터 허브 구축. 둘째, 연구자·기업이 예측 가능하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절차 간소화와 규제 정비. 셋째, 정밀의료·예측의료를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정책 실증 확대. 이들 과제는 어느 하나 쉽지 않지만 좀더 속도감 있게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19년 초기 설계 당시의 계획보다 늦춰지고 있는 빅데이터 구축 일정을 하루라도 앞당긴다면, 그만큼 국민의 건강한 일상과 산업 발전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고령사회 지속가능성과 산업경쟁력, 국민 건강을 동시에 뒷받침하는 국가 전략 인프라다. 데이터는 연결될 때 가치가 커지고, 정책으로 실현될 때 비로소 국가의 힘이 된다. 지금은 고령화 시대의 도전을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보건의료 빅데이터 구축과 활용에 집중시킬 때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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