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환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는 AI 진흥을 위한 정책과 전략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기업들은 AI 조직을 신설하며 '디지털 혁신'을 선언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AI를 도입했음에도 성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업무 복잡성과 피로만 증가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지금 마차에 내비게이션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마차에 최신 내비게이션을 얹는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차가 되지는 않는다. 길 안내는 정교해질 수 있지만, 여전히 말이 끄는 마차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조직이 AI를 대하는 태도가 이와 다르지 않다. 조직의 기능과 구조, 업무 프로세스는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AI 자동화 도구만 덧씌우는 방식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전사적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조직의 변화이다. 조직의 근본적 변화 없이 도입되는 AI는 단지 '첨단 장식물'에 그칠 뿐이다. 글로벌 컨설팅 보고서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듯, AI 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 요인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문화'다. 이를 간과할 경우 전환 실패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시스템 전환을 전제로 작동하는 기술이다. 기존 절차와 규칙을 그대로 둔 채 알고리즘만 얹으면, AI는 혁신을 촉발하기는커녕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을 더 견고하게 만들뿐이다. 예컨대 AI로 보고서 작성은 빨라졌지만 승인 절차가 그대로라 전체 업무 속도는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마차는 여전히 마차이고, 내비게이션은 그저 장착되어 있을 뿐이다.
교육·의료·행정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는 AI 학습 도구를 도입했지만 평가 방식은 과거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병원은 AI 진단 보조 기술을 갖추었어도 의사결정 체계가 변화하지 않아 효율성 개선은 제한적이다. 행정기관 역시 AI 기반 민원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뒤편의 인력 운영과 결정 구조가 아날로그 방식이라 시민의 체감도는 낮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다.
AI 시대의 진정한 혁신은 기술을 도입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업무의 목적·흐름·책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십 년 전 방식의 업무 체계를 그대로 둔 채 AI 자동화 도구만 얹어봐야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기술은 기존 방식을 보완하는 장치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전환(transformation)'이다.
혁신이란 새로운 기술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마차 시대에서 자동차 시대로의 전환은 엔진이라는 기술만 등장해서가 아니라, 도로 체계·연료 공급망·운전 규칙·보험 제도·도시 설계가 함께 바뀌었기 때문이다.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이미 도착해 있다. 이제 변화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다.
마차에 내비게이션을 단다고 혁신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마차를 개조할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로 갈아탈 것인가. AI 시대의 승자는 기술을 보유한 조직이 아니라, 기술에 맞게 스스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조직이 될 것이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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