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랑 가? 여자랑 가? 쓰○○이나 스○○ 하는 거야? 결혼 안 했으니 스○○은 아닐 테고.”
경기도의회 임시회. 경기도의회 제공 대한민국은 성 평등 국가입니다. 남녀 모두 누구나 자유롭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성적 표현과 행위가 보장됩니다. 여기에는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더구나 상대가 원치 않을 때 내뱉는 성적 농담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경기도의 직원 전용 익명 커뮤니티 ‘와글와글’에는 ‘성희롱’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을 ‘비례대표가 위원장인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에 근무하는 주무관’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충격적인’ 주장을 늘어놓습니다. 위원장실에서 퇴근하려던 자신에게 위원장이 약속이 있는지 먼저 물었고, 서울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다고 답하자 다시 “남자랑 가, 여자랑 가?”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라는 작성자의 말에 나온 위원장의 발언이 첫 문장의 “쓰○○이나 스○○ 하는 거야”였다고 합니다. 변태적 성행위를 뜻하는 이 발언은 곧바로 파문을 불러왔습니다.
검찰은 해당 위원장을 모욕 혐의로 지난달 28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야겠으나, 어느 정도 혐의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양우식 경기도의회 운영위원장. 경기도의회 제공 ◆ 5월 성희롱 발언 논란…‘당원권 정지’ 처분에 노조 “솜방망이 처분” 논란의 당사자는 국민의힘 소속 경기도의회 운영위원회 양우식 위원장(비례대표 도의원)입니다. 2021년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고문을 지냈고, 이듬해 치러진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윤석열 후보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 기획실장으로 일했습니다. 당내 입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건 직후 도의회 사무처는 피해 호소 직원과 상담을 통해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고 분리 조치에 나섰습니다. 사태가 커지자 도의회 국민의힘도 입장문을 냈습니다. “남성 간 비공식 대화 중 발언으로 정황과 표현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볼 때 특정 성(性)을 겨냥하거나 불쾌감을 주려는 의도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대응했죠.
당시 조기 대선을 앞둔 국민의힘 중앙당은 진화에 나섰습니다. “권성동 비상대책위원장 권한대행이 ‘충격적인’ 성희롱 발언 논란과 관련해 당무감사위원회에 철저히 진상조사를 진행하도록 지침을 내렸다”며 “엄정한 징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사건 사흘 만에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비공개 윤리위원회를 열었습니다. 양 위원장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 및 당직 해임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날 처분은 지난 3월 언론 탄압성 발언과 함께 병합 심의한 결과였습니다.
이 처분으로 양 위원장은 도의회 위원장직을 유지하고 내년 지방선거에도 별다른 제약 없이 출마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은 “솜방망이 처분의 전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장황한 설명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19일 오전 10시 진행 예정이던 경기도의회 운영위원회의 행정사무감사가 파행으로 치달은 단초였기 때문이죠.
19일 파행한 경기도의회 운영위원회. 경기도의회 제공 경기도의회 운영위 행정사무감사 대상인 도 공무원들은 이날 회의장 입장을 거부한 뒤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입장문에서 “양 의원이 진행하거나 참석하는 행감 출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조혜진 비서실장과 안정곤 정책수석 등 보좌진 6명이 모두 행감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행감장 앞까지 걸어가 반응을 살폈으니, 행감 자체에 대한 거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발표한 입장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양 의원이 성희롱성 발언을 한 것은 엄연한 팩트이다. 검찰 기소가 이뤄진 상황에서 도덕성이 요구되는 운영위원장을 내려놓고 재판에 임하는 것이 당연하다. 양 의원은 그동안 사과 한마디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공무원노조와 공직자들에 대해 법적 대응 운운하는 등 2차, 3차 가해를 해왔다. 저희는 운영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 성실히 임하기 위해 양 의원의 행정사무감사 주재나 참석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했다. ”
이들은 경기도 4000여명의 공직자를 대변해 노조가 양 의원의 사퇴요구를 하는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감에 응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앞서 도의회는 지난해 6월 도지사 비서실과 보좌기관을 행감과 업무보고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경기도의회 위원회 구성·운영 조례 일부개정 조례’를을 제정한 바 있습니다.
경기도청·도의회 전경. ◆ 김진경 의장 “감사권 부정” vs 유호준 의원 “파행 책임 양 위원장에” 이날 회의장 안팎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도청지부 조합원들은 운영위 행감장 복도로 진입하려 했으나 청원경찰들에 막혀 발을 굴렀습니다. 전공노 조합원들은 올해 행감부터 상임위별로 방청을 이어왔으나 이날 운영위 방청은 양 위원장의 불허로 가로막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기도청 공무원노조는 성명을 내고 “경찰, 검찰의 혐의 인정으로 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운영위 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야말로 1450만 도민과 4000여명의 도청 공직자들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양 위원장의 사퇴와 제명을 요구했죠.
경기지역 주요 여성단체들의 연대조직인 경기여성단체연합도 입장문을 냈습니다. “행정 사무감사 의사봉을 잡겠다는 양 의원의 역할 중단을 요구한다. 도의회 구성원 모두 청렴과 책임성을 지니고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반면 도의회는 강경 대응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양 위원장은 “비서실의 행정사무감사 불출석은 의회 경시이고 도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관련 법과 조례에 따라 최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반복되면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운영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유일무이한 사태”라며 “유감스럽다”고 밝혔습니다.
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도 나섰습니다. 그는 “지방의회 감사권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면서 “깊은 유감을 표하며 도민과 의회에 대한 김동연 지사의 즉각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특정 위원의 발언이나 의사진행에 이견이 있다면 의회 내부의 절차와 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기도의회가 모두 이번 파행의 책임을 도 집행부에 넘긴 건 아닙니다.
유호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경기도 공직자들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유 의원은 “파행의 책임은 성희롱 가해자인 양 의원에게 있다”며 “양 의원은 공무원노조와 공직자, 이에 더해 언론을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등 2차 가해를 일삼았고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은 ‘동성 간의 비공식적 대화’였다는 해명으로 도민을 우롱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할 수 없다는 경기도 공직자들의 입장을 전적으로 응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진=유호준 경기도의원 페이스북 캡처 ◆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국감이었다면?…‘성희롱 논란’ 전례 없어 유 의원이 쓴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김진경 의장 및 도의회 동료 의원님들께 요청한다. 계류된 양 의원을 비롯한 저를 포함한 의원들의 징계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한다. 우리가 만든 규칙을 우리가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집행부와 도민께 조례를 지키라고 요구하겠는가.”
현재 경기도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는 양 위원장을 포함해 도의원 8명에 대한 11건의 안건이 회부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수개월째 단 한 건도 심의되지 않아 최근 한 시민단체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윤리위원 전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했습니다.
과거 오랜 기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또 경제지에서 정치데스크를 맡으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를 수 차례 지켜봤습니다. 올해 운영위 국감이 여야 의원들의 ‘배치기 몸싸움’으로 파행을 겪는 등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성희롱을 이유로 파행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입니다. 도의회가 맺은 문제라면 도의회가 먼저 나서 명확한 입장 표명과 해결에 나서는 것이 순리일 겁니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