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챗GPT 먹통 사태의 정치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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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챗GPT 먹통 사태의 정치적 교훈

지난 18일 밤 소파에 누워 휴대폰으로 빈둥거리던 많은 사람은 와이파이를 껐다 켰다 했을 것이다. 챗GPT, 클로드와 같은 AI 서비스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게임, 가상화폐거래소 등 수많은 서비스가 갑자기 먹통이 됐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이상한 건지 와이파이가 이상한 건지 싶었겠으나, 범인은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였다. 웹사이트 보안과 트래픽 관리를 담당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인프라 기업이다.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그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 5분의 1이 이곳을 거쳐 갈 정도로 인터넷 인프라의 핵심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승자독식, 독점구조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많다. 인터넷 전체가 소수의 글로벌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의 한계라는 것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서버를 분산하라'라는 식의 얘기가 쉽게 나온다. 그러나 IT 업계 한 개발자는 "클라우드플레어는 기업 가입자 입장에서 운영과 관리가 쉽고 가격마저도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서비스"라고 말했다. 고도화된 글로벌 인프라를 대체할 서비스를 직접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력도 필요하다. 더 빠르고, 더 안정적이고, 더 저렴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트래픽이 몰리는 것은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특정 기업, 기술업계의 근시안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힘이 없는 이유다.



물론 초집중화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초집중화는 필연적으로 시스템의 다양성과 탄력성을 약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기술 문제인 동시에, 효율성을 이유로 다양성을 잃어가는 시스템 취약성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 문제가 중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이념과 진영이 단단히 굳어져 가고 있다. 이견은 집단의 안정성을 해치는 잡음으로 취급된다. 반론, 소수의 목소리를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처럼 본다. 이번 '쇼츠 국감'은 강성 지지층, 우리 편만을 위한 정치가 빚은 결과다. 단일성, 선명성만 남은 정치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영화 '우주전쟁(2005)'에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한다. 초월적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계인들은 인간을 실시간으로 말살한다. 지구 방위군이 그 어떤 무기를 써도 당해낼 수 없다. 남은 것은 절멸밖에 없다고 여기던 순간, 갑자기 외계인들이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완벽한 기술과 방어 체계를 지닌 외계인들을 쓰러뜨린 것은 초대형 무기도, 지구 방위군의 단합도 아니었다.


지구에 있는 미세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였다. 인간의 거대한 미사일은 거뜬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인류에 기생하는 미세한 미생물의 침투는 막아낼 수 없었다. 인간은 다양한 미생물과 접촉하며 죽고, 아프고 항체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 지구가 완벽히 위생 처리된 무균 상태였다면 외계인의 침공을 끝내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순도 높은 지지층의 목소리만 남은 정치는 정치적 무균 상태다. 정치적 무균 상태란 곧 사회 면역체계가 망가졌다는 의미다. 필요한 건 다른 의견이 충돌하고 섞이고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생태계다. 다양성은 불순물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기초적인 면역이다. 사흘이 지난 클라우드플레어 사태에 이제 와 기술적 교훈을 얹는 건 사족이다. 긴장해야 할 영역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김동표 전략기획팀장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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