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됐을 때 한국은 환호했다. 하지만 정작 떼돈을 번 곳은 넷플릭스였다. 황동혁 감독이 만들었지만, 지식재산권(IP)은 넷플릭스가 소유했다. 시즌 3으로 국내 이야기가 끝나면서 미국에서 새 시리즈를 제작한다. 이제는 K콘텐츠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비단 오징어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유녹(U-KNOCK) 2025 in USA'에선 투자 미팅 181건이 성사됐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미국 투자사·제작사들과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IP 통제권을 둘러싼 줄다리기에서 대부분 밀렸다.
미국 쪽은 글로벌 스트리밍 권리나 플랫폼 판매 시 지분 50%를 요구했다. 할리우드 표준이다. 영화·시리즈·게임·테마파크·완구로 이어지는 생태계에서 수익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면 완구·출판 등 2차 사업은 물거품이 된다.
국내 현실은 더 가혹하다. 넷플릭스는 제작사로부터 IP를 가져가면서 제작 수수료마저 깎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작비의 10% 이상이던 수수료는 현재 3~5%까지 떨어졌다. 100억원짜리 작품을 만들면 3억~5억원만 받는다. 한 제작사 대표는 "몇 년을 준비해서 만들어도 직원 급여를 주고 나면 한 푼도 안 남는다"며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사들은 부당한 구조를 알면서도 넷플릭스에 매달린다. 세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자본이다. 100억원가량을 혼자 조달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투자받으려면 IP 지분을 어느 정도 내줘야 한다.
둘째는 배급망이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가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배급을 해줄 테니 IP를 달라"는 제안을 거부하기 어렵다. 셋째는 검증된 IP다. 모팩 스튜디오의 '킹 오브 킹스'가 북미에서 272억원을 벌어들였지만, 이런 사례는 지극히 예외적이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눈앞의 자본과 배급망에 현혹돼 IP를 통째로 넘기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지역 제한 독점, 세그먼트별 비독점 등 다양한 전략을 펼 수 있어야 한다. 북미 스트리밍 권리는 넘기되 아시아·유럽 시장이나 완구·게임 권리는 지키는 방식이다.
정부의 정책금융이나 대기업 자본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더핑크퐁컴퍼니의 '베이비샤크'처럼 국내에서 먼저 성공한 뒤 해외로 나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내에서 팬덤과 수익 모델을 입증한 뒤 움직일 필요가 있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투자 미팅 주선도 좋지만, 보다 철저한 IP 분쟁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IP 분쟁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해외 투자사와 계약서를 검토하고 법률 자문을 제공하며 분쟁 발생 시 중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중장기 IP 육성 전략도 필요하다. 단기 수출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5~10년 뒤를 내다보며 IP를 키워야 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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