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금융(productive finance). 요즘 금융시장의 핵심 키워드다. 이재명 정부는 꺼져가는 성장엔진의 재가동을 위해 금융의 역할 변화를 주문했다. 생산적금융의 대표 아웃렛인 국민성장펀드도 시동을 걸었다. 내달 10일 출범을 목표로 사무국을 열고 거버넌스 정비 중이다. 이미 4대 금융지주는 향후 5년간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에 40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사실 생산적금융은 생경한 개념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고전경제학에서는 금융이 실물경제의 생산 능력을 향상하는 경우 생산적자본의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생산적금융'이라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한 것은 세계금융위기 직후 즈음이다. 위기의 원인을 금융의 비생산적 자금흐름으로 파악하고 기술과 생산성 중심으로 금융의 역할 변화를 요청했다. 국내에서 생산적금융이 정책용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이다. 달라진 것은 명확한 투자 분야를 위한 장기의 거액펀드가 조성된 점이다. 생산적금융 본질에 보다 다가선 느낌이다.
생산적금융의 긍정적 효과는 미국과 EU의 1인당 GDP 격차 확대로 설명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EU 주요국의 성장률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차이는 미국이 유럽에 비해 신기술 및 설비에 대한 대규모의 지속적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데 기인한다. 총요소생산성은 자본적투자 시점이 가까울수록, 신기술이 자본재에 내재화되는 속도가 빠를수록 높아진다. 미국은 빠른 기술 도입과 가속화된 투자 사이클로 유럽에 비해 뛰어난 생산성을 향유하고 있다.
생산적금융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투자기업 선정이 중요하다. 유사한 성격의 정책펀드들이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등장했으나 성과는 용두사미였다. 정교하고 치밀한 심사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이다. 관이 아닌 민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기업을 검증해야 한다. 투자를 위한 검증이 아닌 실제 비즈니스를 통한 검증이 되어야 한다. 재무적투자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 입장에서 사고해야 한다. 투자 이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성과중심의 관리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지주사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계열사 간 정보범위의 경제를 활용해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Glass?Steagall법 폐지 이후 유니버설 은행이 자금을 공급한 기업의 생산성은 개선되고 시가총액도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생산적금융은 정권에 따라 흥망하는 개념이 아니다. 금융 패러다임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은 민간자본과 정부, 그리고 기업을 공통의 목적 아래 결합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혜택을 제공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성해야 하는 근거이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의 생산적금융 투자를 검토할 수 있는 이유이다. 사모투자와 인프라투융자에 앵커 LP로 참여하되 블렌디드 파이낸스 구조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면 된다. 공적연금이 없는 영국의 주요 사적연금들이 2030년까지 자산의 최소 5%를 벤처·성장기업에, 최소 10%를 사모시장에 투자하겠다는 협약(MHC, MHA)이나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인 401(k) 운용에 사모펀드를 포함한 행정명령은 참고할 만하다. 글로벌 자금의 유치도 필요하다. 다양한 재원으로 조달된 자본의 총합이 성장 가속화에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적금융 정착을 위해서는 회수시장의 활성화도 절실하다. IPO가 거의 유일한 회수 수단인 체제에서 벤처투자로 성공한 자금이 다시 혁신기업으로 공급되기는 쉽지 않다.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세컨더리마켓 전용 플랫폼이 필요하다. LP 지분이나 펀드 지분을 거래 가능하게 해야 한다. 순자산가치(NAV)나 기업 및 펀드 정보가 투명하고 명확하게 공시될 수 있게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기관투자자들의 비상장주식 지분거래에 대한 규제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M&A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야심 차게 시작된 생산적 금융. '돈을 굴려 돈을 버는' 금융이 아닌, '돈을 굴려 경제를 키우는' 금융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 수익 추구가 아닌, 생산능력 확대와 성장을 지원하는 금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금융에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적용될 때,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은 증대될 것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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