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분할을 완료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가 24일 코스피 시장에 나란히 재상장했다. 이번 분할은 K-바이오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라는 점에서 주가의 흐름을 뛰어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 바이오 산업 생태계 재편의 첫 걸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삼성은 바이오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지난 10여년간 세계 최대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일궜고 바이오시밀러 개발 역량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우리 바이오산업의 양적 도약을 견인했다. 이번 인적 분할을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수 CDMO'로 정체성을 고도화하고, 새로 출범한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신약 개발과 바이오 생태계 투자라는 또 다른 성장 엔진을 달게 됐다. 양사의 분할은 그래서, 분리가 아닌 확장이고 전략적 업그레이드다.
돌이켜보면 삼성은 반도체·가전·중화학 등 우리의 주력 산업 분야에서 늘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 빠른 의사결정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떠받친 근간이었다. 삼성의 국내외 공장 건설과 밸류체인 구축은 자연스럽게 국내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들의 동반성장을 이끌었다. 삼성이라는 '큰 나무'가 자리를 잡으면, 그 아래에서 수많은 중소기업이 뿌리내리고 생태계가 풍성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바이오에서도 '빅파마' 삼성의 역할은 긴요하다. 최근 글로벌 신약 개발의 판도는 대형 제약사, 즉 빅파마들이 혁신적인 바이오텍 생태계를 얼마나 잘 가꾸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흐름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ADC(항체약물접합체) 등 차세대 항암제, 중추신경계(CNS) 치료제, 비만 치료제 등은 계열별로 수백조원이 넘는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빅파마는 더이상 모든 연구와 생산을 도맡아 수행하는 회사가 아니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바이오텍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과감한 인수나 협업을 통해 생태계 전체를 살찌우는 과정의 견인차로 정체성이 재정립되고 있다. 화이자는 ADC 기술의 선두주자인 시젠을 430억 달러(약 63조원)에 인수했고 애비브는 101억 달러(약 14조원)를 투입해 또다른 ADC 바이오텍 이뮤노젠을 사들였다. 이처럼 글로벌 빅파마가 유망 바이오텍을 인수하거나 자금을 투자하고 기술거래로 저변과 외연을 확장하는 시도가 글로벌 바이오 업계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이런 결단을 내리는 건 혁신이 자사 연구소만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 역시 대규모 M&A(인수합병)나 기술이전 계약을 만들어낼 자본력을 갖췄고 수많은 바이오텍·파이프라인 사이에서 옥석을 가려낼 인력과 시스템을 보유했다는 점에서 시나브로 빅파마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봐야 한다.
삼성바이오라는 국내 대형 자본이 직접 '혁신의 구매자'로 나서기 시작하면 국내 바이오업계의 판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수년간 얼어붙어 있던 바이오 투자의 심리를 되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삼성의 바이오 생태계 참여가 한 기업의 성장 전략을 넘어, 한국 바이오 산업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시장은 기대한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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