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기업이 회생절차를 앞두고 특정 채권자에게만 담보를 제공한 일에 대해, 법원이 "다른 채권자들을 희생시킨 편파 행위"라며 담보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M&A(인수합병) 지원' 명목으로 받은 대출이었지만, 실제로는 특정 채권자의 채권을 갚는 데 우선 쓰였다는 이유에서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회생법원 제14민사부(재판장 이지영)는 최근 대부금융업체 A사가 낸 채권조사확정재판 이의소송에서 "회생담보권 19억1422만원을 인정할 수 없다"며 A사 패소로 판결했다.
"신규자금 아닌 기존채무 변제용…부인 대상 해당"앞서 A사는 LED(발광다이오드) 제조·판매 업체 B사에 2022년부터 여러 차례 자금을 빌려줬다. B사는 2019년 이후 대규모 적자를 반복하며 완전자본잠식과 부채초과 상태에 빠진 회사였다. 특히 B사는 회생 신청 직전인 2023년 9월 A사로부터 '사업 자금'을 명목으로 약 20억3600만원을 추가로 빌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B사는 A사로부터 돈을 받자마자, 이를 다시 A사의 관계사로 보냈다. 이 관계사는 B사가 과거 발행한 전환사채(CB)를 대신 상환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실제로 이 자금은 B사의 옛 CB 상환 재원으로 사용되도록 미리 설계돼 있었다. B사는 A사의 신규 대출과 관련해 공장용지 9079.5㎡를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양측은 채권최고액 20억3600만원의 근저당권 설정계약을 맺고, 해당 공장 부지에 대한 근저당권 등기를 마쳤다.
이후 B사는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자, A사는 자신이 보유한 약 29억여원의 채권 전부에 대해 "공장 담보로 보장된 회생담보권"이라고 신고했다. 하지만 채권조사확정재판은 "회생 직전에 설정된 근저당은 특정 채권자에게만 유리한 편파행위로서 채무자회생법상 부인 대상"이라는 취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사는 "근저당은 유효한 담보"라며 조사확정재판의 결론을 뒤집어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면서 "A사가 B사에 제공한 신규 자금은 M&A 성공을 통해 B사의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자금조달의 일환이었다"며 "다른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같은 주소지 돌려쓰는 등 특수관계인 정황 포착"1심은 A사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근저당 설정 당시 B사는 이미 심각한 채무초과·자본잠식 상태였고, CB 만기 전부터 다른 채무의 상환에도 차질을 빚고 있었다"며 "이 상황에서 특정 채권자에게만 공장 부동산 담보를 제공한 행위는 다른 채권자들과의 공평을 해치는 편파행위"라고 짚었다.
A사와 그 관계사들, 그리고 B사의 2대주주가 주소를 공유한 점에도 주목했다. B사 2대주주는 공시된 재무제표를 통해 회사의 자본잠식·부채초과 상태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고, 유상증자 및 M&A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관계사 구조와 정황을 종합하면, A사는 이 사건 근저당 설정이 다른 채권자들의 공동담보를 줄이고 자신과 연결된 채권자에게 우선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기존 회생담보권조사확정재판 결정을 그대로 인가했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