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잠들지 않는 시장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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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잠들지 않는 시장보다 중요한 것

처음 가상화폐 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자정을 막 넘긴 시점이었음에도 업비트 모바일 앱 화면은 수백개 코인들의 거래량 폭주로 번쩍거렸다. 해외에서 터지는 사건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투자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동학개미들이 이 같은 일을 겪을 날도 머지않았다. 미국 나스닥이 내년 하반기 24시간 주식 거래 시스템 도입을 천명하면서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여타 거래소들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레스토랑이 온종일 문을 연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손님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시간을 늘려야 한다. 심지어 업계 1위 레스토랑조차 경계하는 토큰증권(STO)도 무섭게 성장 중이다.


한국거래소도 현재 6시간 30분인 거래시간을 12시간으로 늘리고(내년초 목표), 추후 24시간 체제로 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4시간 체제로의 전환은 한국거래소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 만큼 방향성 자체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속도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시장을 24시간 열었는데, 해외자금 유입이 기대에 못미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개인 투자자들은 물론 유관기관, 각계 전문가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는 이유다. 업계 종사자든 아니든 24시간 체제에서 누군가는 철야를 감당해야 한다.


주식시장은 공시와 가격 안정화 장치 등 시장 운영에서부터 가상화폐 시장과는 차원이 다른 난도를 자랑한다. 24시간 체제에서 만약 어떤 상장사가 새벽에 기습 공시를 띄운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실을 모르고 잠이 든 주주, 운 좋게 그 시간에 깨어 있던 투자자의 형평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24시간 시황 감시 인력을 갖춘 기관과의 정보 비대칭 문제가 불거진다. 거래량이 급감하는 시간대에 어떻게 유동성을 공급할지도 고민거리다.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와 각종 제도 정비를 이뤄내도 문제는 남아있다. 아무리 화려한 상점을 24시간 불 밝히고 열어둔다 한들, 진열대에 놓인 상품 자체가 매력적이지 않다면(코리아 디스카운트) 손님의 발길은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재고 관리 비용(시스템 운영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대주주에 편중된 의사결정,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못 미치는 낮은 주주환원율 등에서 비롯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헤지펀드를 비롯한 외국의 소위 '큰손'들은 여전히 국내 증시 진입을 망설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상법 개정이 조속히 마무리되고 기업들이 정말 실질적인 거버넌스 개혁을 단행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얘기다. '잠들지 않는 시장'을 만들기 전에 '투자하고 싶은 시장'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잊혀가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의 불씨를 다시 살려야 할 때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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