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일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국내 금융회사의 보안 투자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며 해킹이나 시스템 사고가 발생하면 금융사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관련 법·제도 개선과 조직 개편을 통해 금융권 전반의 보안 투자 확대·소비자 보호 강화를 추진한다.
이 원장은 1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보안 대응 수준은 해외, 특히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최근 롯데카드·업비트 정보 유출 사태 등 금융권에서 이어지고 있는 해킹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지에 대한 답변이다.
이 원장은 “보안 투자는 원가에 반드시 반영돼야 하지만 경영진이 (회사가) 망할 수도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금융권 전반의 둔감함이 시스템 사고와 해킹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상자산 관련 기업을 포함한 모든 금융회사는 시스템 안전성이 무너지면 존속 자체가 어렵다”며 “(해킹을 당하면 어떤 고객이) 자산을 맡기고 (금융사가) 운용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정보 유출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관련 법 개정과 감독 체계 강화, 조직 개편을 통해 금융사가 보안 투자가 필수임을 인식하게 만들 계획이다. 이 원장은 “시스템 보안은 기업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투자가 돼야 한다”며 “앞으로 금융위원회 등과 논의를 거쳐 법을 개정하면 자본시장법에 준하는 규제와 제재 체계가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직 개편도 진행 중이다. 기존 금융소비자보호처 중심 운영 한계를 개선해 은행·보험·증권 등 각 권역 임원이 책임지고 민원 처리와 검사를 원스톱으로 수행하도록 체계를 정비한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소비자 보호 총괄 본부 또한 신설해 감독 서비스 질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 원장은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 부서장 인사 등은 진행됐으며 검증을 진행 중”이라며 “인사를 포함한 전체 조직 개편은 내년 1월 10일 전후까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원장은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서 "기관 제재뿐 아니라 임원 제재까지 포함해 사전 통지가 이뤄진 상태"라며 엄정한 제재 방침을 재확인했다. 금감원은 상품을 판매한 주요 시중은행 5곳에 대해 약 2조원 수준의 과태료·과징금을 사전 통보했다.
다만 대규모 제재가 자본비율과 위험가중자산(RWA)에 미칠 충격에 대해서는 완충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원장은 "금융위와 협의해 현실적인 조정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과징금이 확정되기 전까지 RWA에 반영되지 않도록 유예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 보호는 분명히 하되, 사후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금융사는 제재 과정에서 충분히 참작할 것"이라며 생산적 금융 위축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지주 회장 선임 방식을 둘러싼 지배구조 문제에도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원장은 "금융지주는 높은 공공성을 가진 조직임에도 이사회가 균형 있게 구성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며 "일부 경영진의 과도한 연임 욕구가 투명성과 건전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실질적 경쟁 없이 형식적 후보만 올리는 구조라면 매우 우려스럽다"고 비판하며 금융지주 지배구조 전반을 점검하는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가동해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아주경제=신동근·이서영 기자 sdk6425@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