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서 원격 진료… 참 신기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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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서 원격 진료… 참 신기한 세상”
남원 비대면 진료 현장 가보니 市, 의료취약지 16곳 시범 운영 마을에서 혈압 등 다양한 검사 예약·처방·약 수령까지 한번에 “병원 갔다 오면 하루 다갔는데 걱정 이젠 사라져” 주민들 호평
1일 오전 지리산 자락 아래에 있는 전북 남원 운봉읍 소석마을 경로당. 하얀 김이 서린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혈압계의 ‘삐빅’ 소리와 어르신들의 담담한 대화가 뒤섞인 풍경이 펼쳐졌다.

“어머니, 손 한 번 올려보세요.” 전담 간호사가 블루투스 혈압계를 한 주민의 팔에 감싸며 부드럽게 말했다. 경로당 한쪽 벽면에는 체성분 측정계, 자율신경기능 검사기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 장기판과 텔레비전이 있던 자리였다.
전북 남원 운봉읍 소석마을 경로당에서 한 주민이 전담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화상 진료를 받고 있다. “이걸 마을서 다 해본다니, 참 세상 좋아졌어.” 혈압을 측정하던 옆 주민이 조용히 말했다. 간호사는 측정값을 확인하더니 태블릿을 톡톡 눌러 병원으로 정보를 보냈다. 곧이어 모니터 화면 속에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르신, 지난번보다 혈압이 좀 좋아졌네요.” 화면을 향해 몸을 기울인 채 어르신은 마치 직접 진료실에 앉아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신기한 듯 웃었다.

경로당에 구축된 디지털 장비는 평상시 주민들의 건강 데이터를 자동 저장해 지역 7개 의료기관으로 전송한다. 의사는 비대면 진료 때 이 정보를 바탕으로 더 정밀히 진단하고 약 처방까지 바로 내린다. 남원시가 자체 개발한 온라인 플랫폼 덕분에 예약부터 활력징후 측정, 신청·접수, 화상 진료, 처방전 발급, 결제, 약 수령까지 한곳에서 끝난다. 남원시가 비대면 진료를 위해 자체 개발한 온라인 플랫폼 덕분이다. 재진이 원칙이지만, 응급의료 취약지 특성상 초진도 가능하다.

“약은 언제 오나유?” 진료가 끝난 주민이 묻자, 간호사는 “병원에서 처방전 전송되면 오후쯤 제가 약국 들러서 대신 받아다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전담 방문간호사인 그는 약사에게 유선으로 복약지도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경로당 매니저와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디지털 기기에 서툰 고령층을 위해 일일이 손을 잡아 안내했다. “이 버튼만 누르시면 됩니다. “네, 맞아요, 한 번만!” 진료를 마친 한 노인이 허리를 펴며 “버스 시간 맞출 걱정도 없고, 눈 오고 비 오는 날도 병원 못 갈까 걱정 안 해도 되니 이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61가구뿐인 이 산촌에서 시내 병원은 항상 멀고, 겨울이면 병원 진료가 ‘하루 행사’였다. 하루 세 차례뿐인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 1시간을 나가야 한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가 도입되면서 이제 경로당 한 켠의 ‘화상 진료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됐다. 손원철(68) 이장은 “시내 병원까지 나가지 않아도 마을에서 진료와 처방까지 받을 수 있게 돼 주민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최근 비대면 진료 활성화 법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가운데 남원시는 의료 접근성이 취약한 16개 농촌 마을에 비대면 진료를 시범운영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스마트빌리지 보급·확산’ 공모에 선정된 뒤 디지털 건강관리 모델을 현실화한 것이다. 시는 이번 사업이 읍·면 지역의 고령층 보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남원 전체 인구 7만4만570명 중 65세 이상은 2만5525명으로 34.2%, 주민 3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지역 57개 의료기관 가운데 비대면 진료에 참여한 곳은 의원급 7곳에 불과해 진료 선택권이 제한된 데다 실제 진료 범위도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관리에 머물러 있다. 어르신들이 많이 호소하는 근골격계·치과·안과 등 필수 진료 과목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현장을 지원하는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방문간호사 3명이 16개 마을의 모든 경로당을 순회해야 해 보름에 1회로 제한되고, 디지털기기 작동을 돕는 경로당 매니저와 행정복지센터 직원의 역할도 지속 가능한 인력 투입 체계가 없는 ‘자원 의존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남원=글·사진 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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