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반도체 호황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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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반도체 호황의 역설

"한국 반도체가 최고 호황을 누리는 지금이 오히려 위기다. 이 시점이 중국의 반도체 메인스트림 본격 진입 원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 내부에서 나온 이 말은 지금 한국 반도체가 마주한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향후 5년 안에 초인공지능(AI) 개발을 통해 AI 패권을 잡으려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은 과거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에 비견될 만큼 치열하다. 이 거대한 경쟁이 전례 없는 수요 급증을 만들어내며 한국에 호황을 안겼지만, 동시에 산업 구조의 약점과 중국의 추격 속도를 더 빨리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고객사가 요청하는 물량을 모두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요는 치솟지만 한국 반도체의 생산 구조는 이미 물리적 한계에 닿아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적층 공정은 기술적 극한에 다가섰고 패키징·전력·부지 확보까지 전 공정이 서로 얽힌 병목에 부딪혀 있다. SK하이닉스의 연간 전력 사용량이 매년 7% 이상 증가하는 등 인프라 문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공급 부족은 단순한 수급 불일치가 아니라 한국의 기존 생산 구조가 AI 시대의 속도와 규모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신호다.


이 공백을 중국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140조원을 투입해 생산능력을 키워왔고 지금은 범용 제품군 일부에서 실제 고객사의 물량 이동이 감지된다. 이러한 시장의 움직임은 단순히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적시에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기업은 증설을 늦추면 점유율을 빼앗기고, 무리한 증설을 감행하면 수요 조정기에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


중국은 2030년이면 성숙 공정 반도체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범용 제품 시장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흔드는 변화다. 단기적인 생산량 증대 여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차세대 기술 전환이다. HBM이 현재 AI 반도체의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열 발생과 전력 소비 문제 등 기술적 난제에 직면해 있으며 유리 기판이나 고대역폭플래시(HBF) 같은 새로운 메모리 기술로의 전환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추격을 막으려면 지금의 캐시카우인 HBM 경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차세대 구조로의 기술 전환을 서두르고 그 구조에 맞는 시장까지 선제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결국 다음 사이클, 즉 AI 반도체 호황 이후 국면에서 버틸 수 있는 산업 구조를 갖춘 쪽이 앞으로의 본격 경쟁력을 가진다. 구조적 전환이 늦어질수록 지금 누리는 달콤한 호황은 더 빠르게 위험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약 10년 전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주요 경제인들에게 "반도체도 결국에는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니 지금 또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과한 우려처럼 들렸다. 하지만 지금의 산업 현실은 그 말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초AI 경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고가 지나간 뒤 어떤 지형이 남을지를 예상하고 그 이후를 견딜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호황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국 반도체의 향후 20년과 이 산업이 한국 경제의 버팀목으로 남을 수 있을지가 갈린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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