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앞으로 5년간 서울 등 수도권 일대에 주택 135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6·27 대책 이후 집값 상승 폭은 다소 둔화했으나 공급 부족 우려가 여전하다는 판단에서다. 역대 정권에서 집권 초마다 대대적인 주택공급을 중심으로 한 '종합선물세트' 방식의 대책을 내놨었다.
이번에 달라진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조성한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대신 직접 시행에 나선다는 점, 그간 주택 인허가를 중심으로 공급계획을 짰던 것과 달리 착공을 기준으로 목표치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공급 목표 실행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를 곁들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실행력과 속도가 관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LH 직접시행, 실행력·속도 높인다는데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8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윤석열 정부에서는 민간 중심의 공급물량을 내놨는데 이번에는 LH 등 공공이 중심이 돼 사업을 시행하기에 정부 계획대로 추진하는 게 가능하다"면서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3기 신도시 보상단계도 마무리 단계인 만큼 실행력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을 통해 LH가 현재 조성 중이거나 조성할 민간 매각 주택용지는 LH가 직접 시행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택지를 조성해 건설사 등 민간 시행사에 팔아 아파트를 짓는 형태가 그간 주택공급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이로 인해 경기가 어려워지게 되면 자금조달 문제로 공급 속도가 떨어졌다. 당초 매각하기로 했던 용지에 직접 사업을 해 2030년까지 총 6만가구를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택지개발지구·공공주택지구 등 LH가 보유한 비주택용지를 용도 전환해 2030년까지 1만5000가구를 추가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LH 직접시행은 더 낮은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으로 기존에 없던 시도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장기적으로 고령화·인구감소에 따라 신규 택지 주택 수요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LH의 강화된 역량이 필요하게 될지 고민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LH가 공공임대 등 기존의 적자사업을 보전할 만한 시스템을 아직 갖추진 못한 점도 보완할 부분이라고 짚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LH 소유 비주택용지 용도전환을 정례화로 미분양과 과잉공급에 시달리는 지식산업센터나 상업 용지 등의 주거 전환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LH 직접 시행으로, 민간 건설사는 공공택지 시공 수주나 도심 정비사업에 집중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책의 실행력과 속도, 민간의 참여 여부, 투기수요를 줄이면서도 실수요자 불편을 최소화할 금융·규제책과의 조화가 정책 효과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비사업 여건개선" 용적률·재건축부담금은 유보
도심 내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후시설·유휴부지 활용도를 높이기로 했다. 30년 이상 된 노후 공공임대주택을 최대 용적률 500%까지 상향한다. 재건축 후 통합 공공임대로 재공급하는 한편 추가 물량은 분양이나 통합 공공임대 등으로 활용한다. 지난해 시범사업을 시작한 상계마들·하계5단지가 우선이다. 수서(3899가구)·가양(3235가구) 등 대규모 단지도 후년부터 시작한다. 2030년까지 수도권에 2만3000가구가량 착공할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유휴부지 개발을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 절차에서 속도를 내야 하는 터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면서 "무주택자 주거불안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공급확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속도감 있는 추진이 시장 안정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사업은 최대 3년 정도 단축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공사비 상승 등 여건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높이 제한·공원녹지 기준 등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5년간 23만4000가구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민간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인센티브는 당장 건드리지 않고 추후 공론화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일부 지역에선 집값을 들쑤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울 재건축 사업을 더디게 하는 배경으로 꼽히는 초과이익환수제 역시 일단 그대로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차관은 "과거 집행 후 유보해왔는데 재건축 부담금이 부과되면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후 상황을 보면서 정책효과를 가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얘기가 빠졌는데 재건축 부담금은 조합원 추가분담금을 높이는 장애요인으로 폐지나 대폭 완화 등 추후 내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文·尹·李 모두 임기 초 공급대책
이번 대책에서 LH 직접시행 등 대책 전반에 변화를 준 것은 역대 정부와의 차별화와 실제적인 공급 확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집권 기간에 수도권에 158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었는데 3년간 실제 착공한 물량은 50만가구가 채 안 된다. 집권 초 공급확대라는 밑그림을 제시했으나 실제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이 뒤따르지 못해 체감도는 떨어졌다. 공사비 급등,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등이 불거지면서 주택공급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집권 초 '주거복지' 명분을 앞세워 공적주택 100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제시했다. 공공임대 물량은 일정 수준 확보했으나 정작 수도권 분양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급대책은 집권 후반기에 내놓으면서 추진동력이 부족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후 브리핑에서 "'이재명 정부'는 이전과 달리 착공이라는 일관된 기준에 따라 국민 여러분이 선호하는 위치에, 충분하고 지속적인 주택공급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시장에서 꾸준히 요구해왔던 주택정책 방향성을 내놨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추진과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함 랩장은 "6·27 가계대출 규제로 급등하던 서울 주택시장을 진정시키긴 했으나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 전세매물 부족·월세화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 주택공급 부족 우려를 줄일 필요가 있던 시점"이라고 말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처럼 수십만, 수백만 가구라는 거창한 숫자가 제시됐지만 국민 체감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서울은 노후주택 멸실속도가 빨라 공급이 늘어도 체감효과가 작고 정비사업 역시 이주수요가 생기는 만큼 새 아파트가 늘어도 추가 공급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