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업계는 지난 8월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방향’에 따라 주요 기업들로부터 사업 재편안을 제출받는 성과를 냈다. 여수·대산·울산 등 3대 산업단지의 16개 주요 기업이 모두 계획을 제출했고, 업계가 제시한 자율 목표인 270만~370만 톤 규모의 NCC 설비 감축도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움직임은 늦었지만 불가피한 출발이다. 석유화학은 한때 한국 수출의 주력 산업이자 제조업 밸류체인의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중국·인도의 저가 공세와 만성적인 공급 과잉, 원료비와 전기요금 등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기존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됐다. 더 미루면 회복의 기회조차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구조조정은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설비 감축과 통폐합, 경쟁력이 낮은 시설의 정리는 생산성 회복과 산업 재편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부는 계획 이행 과정에서 금융·세제·R&D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고,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 같은 협력 플랫폼을 통해 고부가·친환경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지원은 촉진의 수단이어야지, 시장 판단을 대신하는 개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설비 숫자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는 체질 개선이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과 친환경·첨단 소재 개발은 단기적 생존 전략이 아니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다. 구조조정이 비용 절감에만 머물 경우 경쟁력 회복은 요원하다.
특히 여수·울산·대산 등 석유화학 단지는 지역 경제와 일자리의 중추다. 대기업 설비 감축은 협력 중소기업과 지역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소 협력사와 근로자를 위한 전환 지원, 재교육, 대체 산업 연계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산업 재편은 사회적 저항과 지역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 구조조정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 재설계여야 한다.
산업 구조조정에서도 기본과 상식은 분명하다. 경쟁력을 잃은 구조를 방치하면 결국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지금의 구조조정은 과거의 지연을 만회하기 위한 회복의 기회이자,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고통을 피해서는 어떤 성과도 얻을 수 없다. 다만 기본과 원칙 위에서 실행될 때 석유화학 산업은 다시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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