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정연합에서 47년간 목회 활동을 해온 한 원로목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통일교 게이트 유감’이라는 글을 통해 문선명 총재는 생전에 정치인과의 금전 거래를 절대 금지했으며, 이는 철저한 원칙이었다고 밝혔다. 문 총재의 평화 이상을 계승했으나 정치 세계의 생리를 꿰뚫었던 문 총재와 달리, 한학자 총재는 고령과 건강 문제로 중요한 사안을 대신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현재의 논란을 이해하려면 가정연합이 무엇을 위해 정치의 문을 두드렸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문 총재의 평화 사상, 그리고 종교와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문 총재는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중심한 공생·공영·공의주의를 통해 남남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적 남북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한국이 세계 평화의 중심 국가로서 사명을 다하길 바랐다.
그는 종교를 ‘마음의 자리’로, 정치와 경제를 ‘몸의 자리’로 규정했다. 마음과 몸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될 때 온전한 인간이 되듯,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유엔 또한 거듭나야 한다고 보았다. 즉,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상원의 역할을, 정치 지도자들이 하원의 역할을 맡아 상호 협력하는 구조 속에서 마음과 몸이 하나 된 유엔이 될 때, 비로소 항구적 세계 평화가 가능하다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문 총재는 종교와 정치의 협력 관계를 일관되게 견지해 온 것이다.
종교와 정치의 상호 보완을 강조한 이러한 구상이 내적 평화 방안이라면, 외적 평화 방안은 전 세계를 ‘길’로 연결해 국경의 장벽을 허물고, ‘한 하나님 아래 인류는 한 형제’라는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문 총재는 1981년 서울에서 전 세계 과학자 700여 명을 초청해 제10회 국제통일과학회의를 열고,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을 제안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중국·한국·일본을 잇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1단계로 추진하고,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한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자는 구상이었다. 당시 몰튼 카플란 미국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가 7명이나 참석했으며, 참가자 전원이 기립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문 총재는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에 국제하이웨이재단과 일한터널연구회를 조직해 사업이 실현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이에 호응해 니시보리 에자부로 초대 남극월동대장, 사사 야스오 홋카이도대 교수 등 일본 인사들이 추진에 앞장섰다. 한국에서도 정창희 서울대 교수, 황학주 연세대 교수, 성백전 한국해외건설 사장 등 각계 권위자들이 초기부터 참여했고, 서의택 부산대 교수, 허재완 중앙대 교수, 김삼환 호서대 교수 등 도시·토목 분야 전문가들이 자문에 힘을 보탰다. 한일터널이 양국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자 정치권의 관심도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노태우·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이 한일 화합의 한 방안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했고, 일본에서는 모리 요시로 총리가 ‘아셈터널’로 명명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노자와 다이조 전 법무상,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등 다수의 정치인이 깊은 공감을 표했다.
국내외 학자와 정치지도자들이 이 구상에 주목해 온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단순한 토목 사업이 아닌, 한일 화합과 남북통일, 나아가 동북아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정연합이 추진해 온 평화 인프라 구상과 현재 제기된 정교유착 혐의는 분리해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향한 꿈까지 멈출 수는 없다. 인류의 모든 창조적 도전은 언제나 꿈에서 시작되었고, 그 꿈은 결국 현실이 되어왔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