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를 말할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시각적 스펙터클이다. 사하라 사막 일대에서 많은 부분을 촬영한 올리베르 라셰 감독의 영화 ‘시라트’ 는 그 기준에서도 충분히 장관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가는 시각적 성과에만 있지 않다. ‘시라트’는 청각의 향연이며, 가능한 한 최대 음량으로, 완성도 높은 음향 환경을 제공하는 극장에서 소비돼야 할 작품이다. 영화는 모로코 사막 깊은 곳에서 거대한 스피커를 쌓아 올리는 남자들의 손과 몸짓을 비추며 시작한다. 스피커에 전류가 흐르자 금속성 저음이 산기슭을 진동시키고, 비트가 흐르면 수백 명이 몸을 흔든다. 문명과 단절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레이브 파티(rave party·전자음악 중심의 대규모 댄스 모임) 현장이다. 깊은 저음의 박동은 협곡의 바위벽에 부딪혀 되울리고, 내리쬐는 태양 아래 레이버(raver·레이브 파티 참가자)들은 의식이 고양된 상태로 춤을 춘다.
댄스 플로어 한쪽 편에는 이질적인 부자(父子)가 있다. 중년의 아버지 루이스와 어린 아들 에스테반이다. 이들은 반려견 피파와 함께 사막에 왔다. 다섯 달 전 집을 떠난 뒤 행방이 묘연한 루이스의 딸, 마르를 찾기 위해서다. 루이스는 딸이 레이브 파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참가자들에게 딸의 사진을 보여 주지만, 아무도 딸의 존재를 알지 못해 상심한다.
돌연 군대가 들이닥치며 파티는 강제 종료된다. 영화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세계는 종말에 가까운 전 지구적 위기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파티 참가자들을 호송하는 기나긴 트럭 행렬에서, 다섯 명의 레이버는 군인들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트럭 두 대를 몰고 대열을 이탈해 사막을 질주한다. 목적지는 모리타니 국경 근처 어딘가에서 열릴 또 다른 파티. 루이스는 딸을 찾기 위해 작은 밴으로 이들을 따라간다. 트럭들은 사막의 광대하고 건조한 대지를 가르며 나아간다. 여정 속에서 루이스 부자와 레이버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낯선 땅에서 이들은 식량과 연료를 나누며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이동 중 라디오에서는 국경에 집결한 민간인들의 상황과 나토 사무총장의 발언이 흘러나온다. 세계 3차대전이 이미 수평선 너머에서 시작된 듯한 기척이 감돈다.
군대를 피해 산악 루트를 택한 선택은 곧 비극의 문으로 이어진다. 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좁은 산길, 자연은 인간의 사정에 무관심하고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후 영화는 가파른 산길만큼이나 급격한 전환을 거듭하며, 관객의 예상을 번번이 빗나간다.
영화의 성격을 응축하는 한 장면이 있다. 주인공들은 트럭에서 거대한 스피커를 내린다. 사막을 진동시키는 음악이 흐르자 레이버들은 중력을 벗어난 우주 비행사처럼 춤춘다. 그러나 잠깐의 자유는 곧 잔혹하게 깨진다. 오프닝 타이틀이 설명하듯, ‘시라트(sir?t)’는 이슬람에서 천국과 지옥 사이를 잇는 좁고 위험한 다리를 뜻한다. 머리카락보다 좁고, 칼보다 날카로운 다리다. 등장인물 누구도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는 더없이 영적으로 흐른다. 일부 관객에게는 이 영화의 아찔함이 지나치게 강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몰입도로 관객을 좌석에 꽉 붙들어 두는 영화는 쉽게 만날 수 없다. 다층적 음향을 경험하기 위해 가급적 극장에서, 가능하다면 우수한 음향 설비를 갖춘 상영관에서 보기를 권한다.
사진=찬란 제공 작품은 지난 5월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1982년생인 라셰 감독은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2020년 ‘사이트 앤드 사운드’ 선정 ‘주목해야 할 미래의 거장’ 20인 중 한 명이다. 2010년부터 네 차례 칸영화제에 초청됐으며,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서 정식 개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26년 1월 21일 개봉. 이규희 기자 l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