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뉴시스 ‘누가 요즘 TV를 보나’라는 말은 과거로 남는 듯하다. 스마트폰에 밀려 거실에서도 자취를 감춘 일이 이따금 있던 TV가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단순한 방송 수신기를 넘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가장 완벽하게 소비하는 ‘스마트 허브’이자 재난 상황에서 가장 신뢰받는 ‘필수 매체’로 재정의 되면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30일 발표한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TV 이용 행태에 유의미한 변화가 포착됐다. 주 5일 이상 TV를 이용하는 비율은 70.9%로 전년(69.1%) 대비 명확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무서울 정도로 치솟던 스마트폰 이용률은 92.0%에 머물러 지난해(92.2%)와 사실상 같은 수치를 보이며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이용 시간의 역전 현상이다.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TV 이용 시간은 일평균 2시간28분으로 늘어났지만,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2시간5분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특히 1인 가구의 TV 이용 시간은 전년 대비 8분이나 증가(2시간23분)했는데, 이는 혼자 사는 가구일수록 TV를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닌 주요 엔터테인먼트 창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반등의 핵심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TV의 최대 경쟁자로 꼽혔던 OTT가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 OTT 이용률은 81.8%에 달하며 국민 10명 중 8명이 OTT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제공 주목할 점은 OTT 시청 기기의 변화다. 스마트폰을 통한 OTT 이용률은 지난해 91.2%에서 7.6%p 감소해 83.6%를 기록했지만, TV로 OTT를 본다는 응답자 비율은 36.4%로 같은 기간 무려 12.6%p 폭등했다. 이는 시청자들이 이동 중에는 스마트폰을 쓰더라도 콘텐츠 감상은 거실의 대형 TV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플릭스와 티빙 등 유료 OTT 이용률이 65.5%까지 치솟고 숏폼 이용률이 78.9%에 달하면서, 고화질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대로 즐기려는 현상이 TV 이용률 상승을 견인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러한 이용 행태의 변화는 가전 시장의 ‘거거익선(크면 클수록 좋다)’ 열풍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TV의 존재감은 단순히 즐길 거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번 조사에서 TV는 ‘재난 상황 필수 매체’로서의 위상이 올라갔다. 재해·재난 시 필수 매체로 TV를 꼽은 응답은 29.7%로 전년 대비 8.4%p 급증했다. 반면 스마트폰은 전년보다 7.8%p 하락한 68.7%로 격차가 좁혀졌다.
특히 재난 발생 시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 국민의 과반인 59.1%가 TV 방송을 선택했다. 이는 포털(17.1%)이나 메신저(7.7%)를 압도하는 수치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검증된 정보를 전달하는 레거시 미디어로서 TV의 신뢰 가치가 다시금 조명받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방송매체 이용 형태 조사는 2000년부터 매년 진행해왔으며, 올해는 전국의 총 5566가구 13세 이상 남녀 총 8320명을 대상으로 하는 방문면접 방식으로 이뤄졌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