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정광량 “‘높이’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온 또다른 그릇이었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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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정광량 “‘높이’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온 또다른 그릇이었다” [김용출의 한권의책]
2009년 10월1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낮은 구름을 찢고 우뚝 솟아오른 초고층 빌딩이 완공되었다. 유명한 ‘부르즈 칼리파’였다. 완공 전 이름은 부르즈 두바이였는데, 대통령 칼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의 이름을 본 따 부르즈 칼리파로 개칭됐다. 첨탑을 포함한 높이는 828m로, 이전까지 세계 최고층이었던 타이완의 ‘타이베이 101’를 무려 300m 가까이 넘어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 됐다.

“‘두바이는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새기고자 했던 두바이 군주의 비전과 결심이야말로 부르즈 칼리파의 진정한 출발점이다. 이 건물은 높이에 대한 도전이자, 도시와 국가가 스스로를 세계사 속에 위치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에마르 프로퍼티즈의 회장 모하메드 알리 알라바르의 구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두바이의 국제적 위상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구조물을 원했다. ”(51쪽)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부르즈 칼리파는 애초부터 세계 1위라는 목표 아래 최종 높이를 정하지 않은 채 2004년 착공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라이벌로 예상되던 ‘나킬 타워’의 건축 계획이 무산되자, 부르즈 칼리파는 꼭대기에 200m 길이의 첨탑까지 더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될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메가톨’이 되기 위해 건물 중심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강력한 구조 코어가 자리하고, 외곽에는 조건에 따라 가변적으로 설계된 지지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배치됐다. 즉, 건물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되게 만들어 바람과 진동, 하중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간은 역사 이래 하늘을 향해 ‘높이’를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바벨탑에서 피라미드까지 ‘높이’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온 그릇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도시 곳곳에 건설되고 있는 초고층 빌딩들은 바로 이 같은 인간의 욕망과 기술이 만나는 경계에 서 있다.

건축구조기술사이자 초고층 구조설계 권위자인 저자가 신간 『초고층』(지식의날개)에서 30년 이상 국내외 다양한 초고층 프로젝트에 참여해오며 느낀 세계 초고층 마천루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담았다.

책에 따르면, 현대사에서 처음 등장한 초고층은 1931년 완공된 미국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건물의 높이는 391m이고, 이후 설치된 안테나까지 포함하면 총 443m에 이른다. 건물은 대공황 시기인 1929년 9월 계획돼 착공부터 완공까지 단 410일이 걸렸다고 한다. 이는 당대 최신 기술을 총동원하고 최대한 규격화된 자재를 사용해 구조적 효율성과 공정 계획이 빈틈없이 진행됐기에 가능했다. 특히 1933년 제작된 영화 ‘킹콩’에 등장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뉴욕이라는 도시의 상징이 됐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1974년 탄생한 검은 이미지의 시카고 시어스 타워는 당시 높이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 지상 108층, 높이 442m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시어스 타워는 외벽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튜브처럼 설계해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로 지어졌다고 한다.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2014년 다시 세워진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보안 설계, 구조 기준, 피난 계획 등 테러 이후의 세계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강하고 안전한 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1998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세워진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높이 451.9m로, 준공 당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이었다.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서구 중심의 높이 경쟁에서 아시아의 이름을 드높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아시아가 세계를 향해 던진 선언이자, 세계 초고층 건축의 흐름이 처음으로 비서구권의 손에 넘어간 역사적 전환점이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서구 중심의 고도 경쟁은 이 건물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대륙, 다른 문화의 관점에서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39쪽)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긴급 상황 시 두 타워 사이에서 재난 대피 경로 역할을 하는 스카이브릿지가 특징이고, 두 건물에 완전히 고정돼 있지 않고 부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지진이나 강풍 발생 시 구조적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에는 세계 주요 도시들의 초고층 빌딩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와 문화, 건축과 경제, 인물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국의 초고층 빌딩을 둘러싼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 초고층 건축물은 먼저 1995년 삼품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위험하다고 잘못 알려진 ‘무량판 구조’의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고 한다. 보가 없는 무량판 구조는 천장이 평평해 그만큼 개방감이 생겨 공간 활용이 용이하고 슬래브를 두껍게 만들 수 있어 층간 소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만, 기둥과 슬래브의 접점에 하중이 집중돼 설계부터 시공, 유지 관리까지 기술적 관리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40층 이상 규모 무량판 초고층 건물은 2004년 완공된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였다. 2013년 민간 헬기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파트 외벽만 일부 손상되었을 뿐 건물 구조에는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무량판 구조의 안전함이 확실하게 입증됐다는 평가다. 삼성동 아이파크를 이어, 부산 최초의 60층 주상복합아파트 더샵 센텀스타(2008년)와 해운대 아이파크(2011년) 역시 무량판 구조로 차례로 지어지며 무량판 구조가 고층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서울 여의도의 초고층 빌딩인 ‘파크원’은 초고층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구조설계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2007년 착공에서 2020년 완공까지 무려 13년이 걸린 초고층으로, 그 사이 시행사도, 설계사도, 시공사도 모두 바뀌었지만 구조설계자만은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처럼 구조를 숨기지 않고 외부로 드러내는 한편, 회색의 여의도에 강렬한 빨강색이 두드러지는 게 인상적이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세계 초고층 랭킹 6위에 오른 롯데월드타워는 2016년 완성되기까지 수차례 디자인이 변경됐다. 초반에는 첨성대 형태로 계획됐지만 공사비 급등과 시공 현실성의 한계에 부딪혀 수차례 디자인이 변경됐고 최종적으로 단순하면서도 한국의 미감을 살린 현재의 ‘붓’ 형태로 최종 결정됐다. 인천의 송도 포스코 타워의 경우 초고층 구조설계에서 가장 예민한 변수인 바람을 이기는 기술이 집약적으로 적용됐다고 한다.

예기치 못한 리스크로 끝내 지지어지 못한 초고층 빌딩도 있다. 서울의 아이콘을 꿈꿨지만 완공되지 못한 1999년 서울 상암 한강변의 ‘천년의 문’, 2008년 첫 삽을 떴지만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무산된 ‘151 인천타워’ 등이 그것이다. 여러 사정으로 지어지지 못하고 설계도에만 남은 초고층들은 도시의 욕망과 한계를 잘 드러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콘크리트와 철골, 엘리베이터, 스카이브릿지, 창닦는 시스템까지 마천루를 가능하게 만드는 재료와 기술은 앞으로 인류에게 어디까지 높이를 허락할까. 저자는 과거의 초고층이 도시의 권력과 경제력의 표식이었다면, 오늘날 초고층은 기후와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여 얼마나 오래, 어떻게 변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초고층을 오래 바라볼수록 한 가지 사실이 또렷해진다. 도시의 가장 높은 구조물은 늘 시대의 속도를 가장 먼저 드러낸다는 점이다. 과거의 초고층이 도시의 권력과 경제력의 표식이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건물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어떻게 변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다. ”(271쪽)

우리는 앞으로 어떤 스카이라인 위에서 살아갈 것인가. 초고층 건물을 둘러싼 고민의 끝에는 최종적으로 ‘인간’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과, 초고층에서 실제 살아갈 사람, 그리고 미래 세대가 물려받을 공간을 고민하는 사람들 등등. 결국 “초고층은 소통이다. ”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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