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브라운 작가[사진= 김호이 기자] 영감은 어디서 얻고, 작품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 저는 주로 어린 시절 겪었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제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다. 그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수없이 고치고 다듬으며 이야기를 발전시킨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의 형태가 갖추어지고, 결국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된다.
작품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릴라’는 어떤 의미를 갖나. 작가님과 닮아 보이기도 한다
- 고릴라, 침팬지, 인간은 모두 유인원 가족이다. 저는 이 사실에서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이 제 그림 속 고릴라에서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독자들은 작품 속 고릴라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고릴라는 당신 안의 어떤 부분을 대변하는가
- 인간은 동물이면서도 스스로를 동물과 다르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동물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저는 고릴라를 통해 인간이 본래 동물과 얼마나 가까운 존재인지, 그리고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진= 김호이 기자] 그림책을 만들며 “이 장면이 나를 구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
-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제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느꼈다. 전시장에 걸린 제 그림들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나는 훌륭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이 제게 큰 힘이 됐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작품에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왜 유년의 기억이 그렇게 중요한가
- 첫 번째 경험은 누구에게나 오래 남는다. 그것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고 결국 어른이 된 우리를 형성한다. 아동문학 작가들이 유독 어린 시절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 역시 유년기의 감정과 기억을 계속 불러내 작품 속에 담는다.
앤서니 브라운에게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 저는 작업할 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림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과 못 그린 그림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그림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바뀌면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진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그림책이 가진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애니메이션, 만화, 유튜브 영상은 재미있고 생생하지만,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다. 반면 그림책은 정적이다. 독자가 책을 앞에 두고 그림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않고 발견하는 즐거움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그림책만의 차별화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 작가로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어떻게 극복했나
- 1990년대 후반, 공원에서라는 책을 만들던 때였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내가 과연 계속 그림책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1997년 '꿈꾸는 윌리'를 작업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은 그림과 글의 관계, 그리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순간 다시 기운을 얻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힘이 됐다.
언젠가 붓을 내려놓는 날이 온다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 저는 죽는 날까지 그림책을 만들 거다. 설령 그림책의 시대가 끝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가 온다 해도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만들 것이다. 그림책은 제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 사인 [사진= 김호이 기자]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랑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다.
바쁜 일상에 지쳐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달라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자지구의 비극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아주경제=김호이 객원기자 coby1@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