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와 보급 과정에서 ‘세종실록’에 거명된 것으로 알려진 청주를 ‘훈민정음특별시’로 만들기 행보가 본격화한다.
훈민정음특별시 청주 만들기 추진위원회는 7일 충북자연과학교육원에서 훈민정음특별시 청주만들기 발기인선언대회를 열었다. 청주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회복하고 도시의 품격을 고양하는 방안으로 범시민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추진위는 훈민정음 자모 28자에 상징성을 부여해 위원장인 신방웅 전 충북대학교 총장을 비롯해 28명으로 구성됐다.
훈민정음특별시 청주 만들기 추진위원회는 7일 충북자연과학교육원에서 훈민정음특별시 청주만들기 발기인선언대회를 열었다. 독자 제공 이날 선언대회에서 ‘청주를 훈민정음특별시로’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선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장은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행궁이 궁궐 내 소모적 논쟁과 정치적 간섭을 차단하고 훈민정음 연구에만 전념한 ‘비밀 연구소’였다고 주장했다. 세종대왕은 1444년 2월20일 최만리 등 집현전 학자들의 격렬한 반대 상소(갑자상소) 직후 8일 만에 초정행궁으로 향했다. 이 상소에는 “언문(훈민정음) 같은 나라에서 꼭 제 기한 안에 시급하게 할 일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제소에서 서둘러 만듦으로써 전하의 몸조리에 번거롭게 하시나이까. 신 등은 그 옮음을 더욱 알지 못하겠나이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 1차(봄)와 2차(가을) 행궁을 통해 총 122일간 초정행궁에 머물렀다. 당시 안질 치료와 요양이 목적이었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단순한 요양 목적이었다면 반대 상소 직수 왕세자까지 대동해 122일이라는 장기간 체류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훗날 신하들이 요양을 위해 초수리(초정행궁) 행차를 재차 권유했을 때 세종이 ‘백성에게 폐가 된다’며 거절한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왕세자(후일의 문종) 등장도 반증이다. 김 원장은 “최만리 상소문에 ‘동궁이 성리학 공부를 등한시하고 언문 같은 잡기에 힘쓴다’라고 비판했다”며 “역설적으로 왕세자가 훈민정음 관련 연구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1443년)와 반포(1446년) 사이 3년 중 122일을 초정행궁에서 보냈다. 김 원장은 “세종이 행궁에서도 훈민정음의 실용성 검증과 보급 작업을 쉼 없이 추진한 것은 ‘행제소에서 급급하게 하시나이까’라는 상소문이 직접적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훈민정음 창제 583돌,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는다”며 “걸었던 그 길 위에서 훈민정음의 숨결을 다시 느끼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추진위는 훈민정음 연구단체, 해설사협회, 세종대왕 기념사업회, 한글 연구단체 등 시민 참여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가칭 훈민정음 마을(또는 한글역사마을) 조성, 세종대왕 학당, 훈민정음 학당, 한국어 학당 등 종합 사업계획서를 마련한다.
여기에 초정행궁과 치유마을을 연계한 체류형 행사와 청주를 거점으로 ‘한글바람운동’을 범국민적으로 펼쳐 무분별한 외국어 외래어 사용 실태를 바로잡고 한글 간판 전용 시범사업도 벌일 참이다.
신 위원장은 “세종대왕은 안질 등의 치료를 명분으로 두 차례에 걸쳐 초정에 머물며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보급 방안을 연구했다”며 “청주는 그 자체로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이제라도 훈민정음특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윤교근 기자 sege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