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0∼30대에게 북한이나 통일은 안드로메다처럼 먼 주제가 됐습니다. 예술 작품에서도 북한을 유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끊긴 것 같았어요. 그 간극을 잇고 싶었습니다. ” 김보솔(37)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광장’(15일 개봉)은 북한 평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김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 작품으로 완성한 이 영화는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콩트르샹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돼 8관왕을 차지했다. 장편 데뷔작 개봉을 앞둔 김 감독을 6일 화상으로 만났다.
‘광장’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 소속 서기관 ‘이삭 보리’(Isak Borg), 그가 사랑하게 된 북한 여성 ‘서복주’ 그리고 이들을 감시하는 보리의 통역관 ‘리명준’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외국인과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보리와 복주는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온 보리가 함께 떠나자고 제안하자, 복주는 이를 거절한 뒤 돌연 자취를 감춘다. 슬픈 사랑 이야기와 첩보 스릴러의 긴장감을 절제된 서사 속에 녹여내며, 프레임마다 인물들의 깊은 외로움이 배어 있다.
작품의 출발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감독은 “실제 평양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한 스웨덴 외교관의 인터뷰 기사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고 했다. 외교관 신분 덕분에 보호받지만, 늘 주변의 감시를 받는 이방인으로 낯선 공간에서 느낀 고립감이 강하게 드러난 인터뷰였다. 그는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나면 안 될 사람을 만나면 어떨까, 그런 상상이 시작됐다”며 “이미 내재해 있던 북한에 대한 오랜 관심이 그 기사로 트리거를 맞은 셈”이라고 덧붙였다.
고등학생 시절 접한 리영희의 책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대학에서 영화·미술·미학을 공부하며 사회주의 미술사를 접한 경험도 북한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게 했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 등 북한을 배경으로 탄생한 다큐멘터리도 큰 영향을 줬다.
애니메이션 영화 ‘광장’ 속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그는 “잘 모르는 세계, 불확실한 공간을 다루지만, 북한을 함부로 그리지 않겠다는 원칙으로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약 6개월간 국내에 출간된 북한 관련 서적을 섭렵하며 시나리오를 썼고, 이후 탈북민 두 명에게 자문해 교차 검증을 거쳤다. 그중 한 명은 보위부 출신 인물이었다. 작품 제목 ‘광장’은 최인훈의 동명 소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통역관 ‘리명준’이라는 이름 역시 의도된 선택이다. 김 감독은 그는 “영화 속 명준이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곧 자유의 순간”이라며 체제의 억압 속에서 불안을 잠시 잊고 자유를 경험하는 장면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삭 보리’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영화적 참조가 숨어 있다.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 속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한국 관객이 발음하기에도 자연스럽다.
그는 “각국 영화제를 다녀보니 루마니아, 독일처럼 과거 사회주의적 생활이나 독재 정권을 경험한 국가 관객들의 반응이 유독 뜨겁고 이해도 깊었다”면서도 “하지만 이 이야기를 가장 깊이 공감할 관객은 한국 관객”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차기작으로는 ‘세 자매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귀신과 싸우는 이야기’를 설정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걸 만들려는 생각이냐는 말을 요즘 정말 많이 들어요(웃음). 아뇨, 이미 2023년에 쓴 트리트먼트입니다. ‘죽은 사람의 가치는 산 사람들에 의해 쓰인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이규희 기자 l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