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회장은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 현장에서 “두산의 맞춤형 에너지 솔루션으로 인공지능(AI) 시대 에너지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기술 트렌드를 나열하는 전시장에서 이 발언은 전략적으로 들린다. AI 경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산업 리더십의 기준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겨냥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AI 담론의 중심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반도체 성능에 있었다. 그러나 현장은 이미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는 어디서, 어떤 전력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대규모 AI 모델과 데이터센터가 확산될수록 병목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전력과 에너지 인프라에서 발생한다. 박 회장의 메시지는 바로 이 지점을 직설적으로 짚는다. AI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이전에 전력·에너지 최적화라는 인식이다.
해외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아마존 AWS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터센터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요소는 네트워크가 아니라 전력 접근성과 안정성이다. AI는 디지털 산업이지만, 동시에 가장 전통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이 됐다.
제조·에너지 기업의 전략도 바뀌었다. GE는 가스터빈과 디지털 운영 기술을 결합해 발전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지멘스 에너지는 스마트 그리드와 분산형 전력 관리에 집중하며 “에너지는 더 이상 공급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공식을 굳히고 있다. 두산이 CES에서 제시한 가스터빈, SMR, 수소연료전지의 조합 전략은 이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이 지점에서 박정원의 기업가정신이 드러난다. 그는 단일 기술의 승부에 베팅하지 않는다. 대신 고객 여건에 따라 조합할 수 있는 에너지 포트폴리오, 다시 말해 변동성의 시대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 인프라를 선택했다. 이는 피터 드러커의 말과 닿아 있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있다. ” 두산은 데이터 경쟁의 정면승부 대신, AI 산업 전체가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 병목을 선택했다.
마이클 포터의 격언도 떠오른다. “경쟁우위는 운영 효율이 아니라 차별화된 포지셔닝에서 나온다. ” 맞춤형 에너지 솔루션은 바로 그 포지셔닝이다. 모두가 AI를 말할 때, 두산은 AI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말한다. 경쟁의 무대를 한 단계 바꾸는 전략이다.
제조 강국 한국의 반격 카드 역시 여기에 있다. 한국은 플랫폼과 데이터에서는 후발주자일 수 있다. 그러나 발전 설비, 원전·SMR, 가스터빈, 로보틱스처럼 현장에서 검증되는 기술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AI를 움직이는 전력의 신뢰성은 코드가 아니라 공정과 설비에서 나온다. 두산의 선택은 한국 산업의 강점을 AI 시대의 중심으로 끌어올린다.
CES에서 함께 전시된 피지컬 AI는 그 연장선이다. AI를 화면 속에서 꺼내 작업자와 설비, 에너지 흐름에 직접 연결하는 순간, AI의 가치는 정확도가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로 평가된다. 헨리 포드의 말처럼 “비용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정을 바꾸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산업 리더십은 더 빠른 알고리즘이 아니라, 더 안정적인 전력과 더 정교한 에너지 설계에서 갈린다. CES 2026에서 박정원 회장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맞춤형 에너지 솔루션은 구호가 아니다. 제조 강국 한국이 다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우측)과 박지원 그룹부회장(좌측)이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CES 2026 현장에서 두산 부스에 전시된 가스터빈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두산그룹] 아주경제=임규진 뉴스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