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추동에 있는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선 대청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디지털영상관으로 재개관하면서 가족 단위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0월 기준 방문객은 7만명으로 전년 4만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생태관에선 대청호 생성 스토리를 영상으로 보고 벚꽃·장미 등을 미디어아트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대청호와 인근에 서식하는 동·식물 등 생태 정보 제공은 물론 그림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연간 10만명 가까이 찾는 명소이지만 1층부터 3층까지 생태관 어디에도 차 한잔하며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은 없다. 동구가 2층 영상관 옆 테라스에 직영 커피숍 개설을 구상했지만 규제에 걸려 운영할 수 없다. 관련 법에는 상수원보호구역에 묶인 지역에서 민박업이나 음식점을 시·도 단위에서만 할 수 있다. 동구처럼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직영할 수 없다.
◆지난 40여년간 누적 피해액만 5900억
대청호 인근 마을 주민들도 불만이다. 주민 김상택(78)씨는 8일 “충북 청남대에선 2024년 하반기부터 라면을 팔지 않냐”며 “그곳에선 모노레일도 조성해 대대적 관광지로 거듭난다는데 같은 상황에서 동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풍경만 좋으면 뭐하느냐? 주민들은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다 떠나간다”고 하소연했다.
대청호는 금강 최초의 다목적 댐인 대청댐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대전 동구와 대덕구, 충북 청주시와 보은·옥천군 등에 걸쳐 있다. 1973년 6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후 1980년 11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였다. 대청호 주변 6만1260㎡ 면적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는데 이는 동구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면적이다. 동구 마을인 대청동은 면적의 97%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대전 전체로 보면 14.4%에 해당한다.
대청호 유역의 규제는 이중삼중을 넘어 ‘7중 규제’가 중복 적용되고 있다. 수질보전과 생태보전, 국토관리, 산림보호 등을 목적으로 상수원보호구역·수질보전지역·수변구역·개발제한구역·야생동물보호구역·산림보호구역·수산자원보호구역 등 7가지 규제로 묶여 있다. 규제는 개인과 사회·시장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장기적으로 공공 가치를 보호하는 취지이지만 주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주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재산권 제약이다. 8일 동구에 따르면 대청동 주민등록인구는 지난해 11월 기준 2097명으로 2008년 3255명에서 약 36% 감소했다. 대청동의 소멸지수는 0.095(0.2 미만 고위험)로 전국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동구 관계자는 “대청호 유역의 각종 규제로 인해 주민의 평등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에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며 “이는 인구유출과 고령화 심화로 지역소멸이 가속화하는 핵심 원인”이라고 말했다.
◆규제 풀려 5개 시·군·구 공동대응
대청호 유역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45년이 지나면서 지역 여건과 수질 관리 기술은 진일보했으나 규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동구 대청동 등 주요 유역은 최신식 하수관로 정비가 완료돼 발생한 오수가 상수원으로 유입되지 않고 처리장으로 직접 이송되는 원천 차단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다. 그러나 수도법은 45년 전과 같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동구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관리가 가능한 영역까지 여전히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규제하면서 지역 기능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구조적 한계는 현장에서 구체적 문제로 나타난다. 이미 취락과 생활 인프라가 만들어진 환경정비구역에서 주민 소득과 직결되는 음식점 면적 확대나 민박업 같은 최소한의 체류형 기능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다. 동구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관리주체가 사라져 오히려 환경 관리의 사각지대가 커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청호 규제의 핵심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소관인 ‘수도법’과 ‘상수원관리규칙’ 개정이다. 2024년 하반기 상수원관리규칙이 개정되면서 같은 대청호 유역인 청남대에서는 ‘라면 한 그릇’이 가능해졌다. 충북도는 청남대 경호인력이 이용하던 군사시설을 휴게·일반음식점으로 용도 변경해 김밥·음료를 파는 음식점(150㎡)으로 조성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완화가 동구엔 적용되지 않는다. 개정 규칙이 음식점 등의 운영 주체를 광역단체로 제한해 놨기 때문에 기초단체인 동구는 직영으로 휴게·음식점을 운영할 수 없다.
동구는 생태·관광활성화가 아닌 ‘주민 삶의 지속성’과 ‘지역소멸 방지’를 위해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구는 대청호 상수원관리구역 제도 개선을 기후부에 공식 건의하고 팔당호 사례를 참고한 합리적 제도 개선을 모색 중이다. 대청호 규제 문제가 광역 차원의 정책 검토와 조정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대전시와도 협력에 나설 방침이다.
동구는 대덕구, 청주시·옥천군·보은군 등 대청호 인근 5개 지자체와 함께 ‘대청호 유역 공동발전협의회’를 출범, 공동대응에 나섰다. 박희조 동구청장은 “대청호는 동구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중한 자원으로 환경 보전과 지역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주민들이 경제활동으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규제 개선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박희조 대전 동구청장 “불편함 넘어 살아갈 방법 없어… 사람과 환경 공존의 길 찾는 것” “대청호 인근 마을 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은 ‘불편하다’가 아니라 ‘살아갈 방법이 없다’입니다. ”
박희조(사진) 대전 동구청장은 “대청호 유역 마을 주민들의 삶을 잇기 위해서라도 45년이나 각종 규제로 묶인 대청호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청호를 둘러싼 각종 규제가 지역 기능 자체를 상실시키고 있다는 게 박 구청장 진단이다.
박 구청장은 8일 인터뷰에서 “규제가 삶을 잠식하면 안 된다”면서 “수십년간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다가 이제는 모두 떠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규제는 관리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모두 떠난다면 결국은 관리조차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직격했다.
규제로 인한 제한은 주민 복지나 도시재생 등에서만 막히는 것이 아니다. 대청호 바로 앞 마을로 마을의 97%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대청동은 최소한의 주택 정비나 소규모 개조조차 못하고 있다. 정주 의지가 떨어지면서 주민들의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규제 개선과 완화를 단순 민원이 아니라 제도 개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가장 큰 벽은 법령이다. 시작 단계부터 법에 부딪히자 매번 규제 개선은 착수도 하기 전에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동구도 기후에너지환경부에 과학적 근거를 들어 규제 개선의 필요성을 제시했으나 40여년 전 반대 논리에 막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기후부는 하류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우려, 전국 단위의 파급효과 등을 들어 대청호 유역의 규제 완화에 선뜻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동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수원규제로 장기간 피해를 입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의 경우 상수원규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2020년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27일 헌법재판소에서 소원이 각하됐다. 박 구청장은 “남양주시의 사례는 상수원 문제가 기초단체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인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 구청장은 “규제 개선은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 논리가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이란 국가적 과제 속에서 함께 검토돼야 할 사안”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국가 수자원 관리정책 전반과 연결된 구조적 사안인 만큼 기후부를 비롯, 관계부처와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거의 반세기 동안 묶인 규제를 완화하는 게 쉽지 않은 길임을 박 구청장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두드리겠다고 했다. 박 구청장은 “규제 개선은 대청호를 보호하면서도 사람과 환경의 공존, 그 가치를 지역의 경제와 삶으로 연결하기 위한 필수 선택”이라며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도 계속해 두드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대전=강은선 기자 groov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