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9·7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만을 겨냥하면서 지방 건설경기 부진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방 주택시장을 가늠하는 모든 지표가 고꾸라진 가운데 새 정부 들어 처음 나온 주택공급 확대 대책이 철저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련된 탓이다.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마련한 방대한 대책 자료집에도 지방 관련 언급은 과거 대책을 재확인한 수준에 그쳤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지방 주택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건설투자 회복이 더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가 지방을 버렸다'는 식의 들끓는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맞춤형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바닥 뚫린 지방 부동산, 건설투자 발목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9월 경제동향'에서 "지방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면서 건설투자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방 부동산 침체가 건설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국가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행에서도 우리 경제성장률을 갉아먹는 주요 배경으로 건설경기 부진을 꼽고 있다.
7월 기준 건설기성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2% 줄어들며 전달(-12.1%)에 이어 두 자릿수 감소 폭을 이어갔다. 건설기성은 공정에 따라 지급받는 공사비로 현시점의 건설투자 동향을 드러내는 지표다.
지방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방 아파트값은 올해 누계로 1.27% 하락했다. 5대 광역시는 1.80%, 8개 도는 0.95%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은 4.83%, 수도권은 1.29% 오른 것과 상반된다. 특히 대구는 -3.25%로 전국에서 하락 폭이 가장 컸다. 93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지방 시군구 104곳 가운데 81곳이 하락한 반면 고작 23곳만 올랐다. 바닥까지 떨어진 데 이어 뚫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요 지표도 부진하다. 지방 1순위 청약 경쟁률은 2021년 13.6대 1에서 지난해 6.2대 1로 낮아졌는데, 올해 들어선 5.2대 1(9월 10일 기준)로 더 떨어졌다. 전국 미분양 주택의 약 79%(7월 기준)가 지방에 몰려 있다. 입주 물량도 올해 13만4246가구에서 내년 9만5254가구로 급감할 전망이다. 지방 입주 물량이 10만 가구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2012년(7만6213가구) 이후 14년 만이다.
대책은 두 문장, 96글자가 전부…"맞춤형 후속대책 서둘러야"
이런 상황에도 정부의 9·7 대책 속 지방 관련 내용은 단 두 문장, 96글자가 전부였다. "지방은 장기간 집값 하락, 미분양 심화 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회복 등을 통한 미분양 해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제지원·미분양 매입 등을 포함한 '지방 중심 건설투자보강방안'을 지난 8월 14일 발표했고 후속 조치를 이행 중"이라는 내용이다. 새로운 해법 없이 원론적 언급에 그쳤다.
그간 지방을 중심으로 요구해왔던 세컨드홈(제2주택) 제도를 광역시에 확대 적용해달라는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과 10대 건설사 최고경영자 간 간담회에서 제기된 지방 다주택자 규제 완화 건의도 수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5대 광역시를 중심으로 '정부가 지방을 버린 것 아니냐'는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대규모 공급 계획으로 수도권 자금 쏠림 현상이 예상되는 터라, 지방 미분양 해소는커녕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더 빨리 수면 위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지방 맞춤형 후속 대책 없이는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성수 영산대 부동산대학원 원장은 "서울은 가격 불안을 잡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이미 침체에 빠진 지방은 부양책이 시급하다"며 "지방 중소 건설사는 대형사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주택시장에 그치지 않고 지역 대학·일자리·경제 전반과 직결돼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국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지방에 한해 세제 조치를 차별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고 균형발전 차원에서 후속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