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작년 10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당시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내란 특별검사팀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특검이 내란 혐의로 기소한 국무위원 가운데 두 번째 구형이다. 이 전 장관 측은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치환하는 발상 자체가 무리"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12일 이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직권남용, 위증 혐의 사건 결심공판을 열었다. 이날 오전 피고인 신문에 이어 오후에는 특검 최종의견, 구형, 변호인단 최후변론, 피고인 최후진술이 진행됐다. 재판은 저녁 무렵 종료될 것으로 예고됐다.
특검팀은 "이 사건은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계획에서 피고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은 이상민 전 장관이 통제하는 구조였다"며 "국가 무력 조직이 동원된 내란 범죄"라고 강조했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 최측근이자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최초 소집된 국무위원이라는 점을 짚었다. 계엄 선포 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관련 내용을 들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고, 이후 경찰·소방을 통해 지시가 실행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피고인은 경찰이 국회를 봉쇄할 것을 알고 이행 상황을 보고받았으나 묵인했고, 나아가 소방 공무원들에게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를 지시했다"고 했다.
특검은 단전·단수 지시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형법 제175조는 전기 공급 방해의 예비·음모만으로도 처벌하는 중대 범죄"라며 "언론 통제 목적이라는 점과 인명 피해 위험성을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판사만 15년 한 엘리트 법조인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 때문에 장관의 책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윤제 특검보는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은 적 없다고 하면서 기억이 안 난다는 변명은 듣는 사람조차 낯부끄럽다"며 "거짓말과 증거인멸, 위증으로 12·3 비상계엄의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고 했다. "최고위층 내란 가담자를 엄벌하지 않으면 또 다른 쿠데타 준동자가 등장할 것"이라고도 했다. 특검은 양형 사유를 종합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는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한 형량과 같다.
이 전 장관은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일체 부인해왔다. 이날 피고인 신문에서도 "비상계엄과 내란을 연결 짓는 것 자체가 창의적 발상"이라며 "비상계엄은 비상계엄이고, 내란은 내란"이라고 주장했다.
특검은 비상계엄 당일 이 전 장관이 오후 8시 26분부터 9시 10분까지 대통령 집무실에 머문 점을 지적하며 "34분간 단전·단수 지시나 문건을 받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이 전 장관은 "책상 위에 문건이 놓인 것을 봤을 뿐 직접 받은 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오후 9시 10분께 나왔다가 14분께 다시 들어가 13초간 머물렀다며 "계엄을 만류하려 들어갔다가 우연히 문건을 보게 돼 내용은 인지했다"고 했다.
특검이 "13초 만에 인지가 가능하냐"고 묻자 "한번 실험해보라. 가능하다"고 맞섰다. 이어 특검은 이 전 장관이 오후 9시 48~51분 양복 안주머니에서 문건을 꺼내 보는 장면이 담긴 대통령실 CCTV 영상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울산에서 올라오는 아내 일정이 걱정돼 당일 일정표를 꺼내 봤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 후 대접견실에서 한 전 국무총리에게 문건을 보여주는 모습이 포착된 데 대해서도 "갖고 있었던 건 일정표 정도"라며 "계엄을 언제 알았냐는 질문에 답하며 보여준 것 같다"고 해명했다.
특검은 계엄 선포 후 허석곤 전 소방청장과의 통화를 문제 삼았다.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전 장관은 "집무실에서 본 문건 내용이 걱정돼 물어본 것뿐"이라며 "일반론적인 얘기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허 전 청장은 앞선 공판에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언론사 몇 곳에 대한 단전·단수 요청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경찰로부터 요청받았다는 건 아니다"고도 바로잡았다.
특검은 이 전 장관이 지난해 2월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단전·단수를 지시한 적 없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사실도 없다"고 진술한 점도 위증 혐의로 적용했다.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비상계엄이 곧바로 내란이라는 인식은 당시 누구도 가질 수 없었다"며 "핵심 실행행위로 지목된 통화 외에 실질적 가담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 문건 교부 자체도 직접 증거가 없고 추론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 측은 재판 말미 최후진술 시간 배분을 두고 "특검은 수백 명을 조사했는데, 법정에서 허용된 시간만으로 방어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충분한 시간을 요구했다. 재판부는 "시간 안배를 해달라"며 조율을 요청했다.
이 전 장관은 평시 계엄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불법적인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하고 사실상 방조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청과 소방청에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하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범죄에 순차 가담했다는 게 특검 판단이다.
이 전 장관 선고는 이르면 1월 말에서 2월 중순 나올 전망이다. 이번 구형은 내란 혐의를 받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다른 국무위원 사건의 기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아주경제=원은미 기자 silverbeauty@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