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미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명문대에서 최고 성적표가 의대가 아니라 반도체·AI·로봇공학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히 국가 정책에 부응하려는 애국심의 문제가 아니다. 졸업 이후의 경로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의대는 안정된 삶의 ‘확정 경로’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공대는 여전히 가능성의 언어로만 설명된다. 가능성만으로는 부모를 설득하기 어렵고, 리스크를 감수할 유인도 약하다. 그래서 의대 열풍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인재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첫째, 국가 선도 트랙을 명확히 해야 한다. AI·반도체·로봇 같은 전략 분야에 대해 ‘입학–연구–병역–취업’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일시적 장학금이 아니라, 일정 성과를 낸 인재에게 국책 연구소, 공공 R&D, 전략 기업으로 이어지는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중국이 강한 이유는 인재에게 ‘혼자 헤엄치라’고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실패를 전제로 한 인재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공대 기피의 핵심에는 실패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공통점은 한 번의 실패로 커리어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는 전략 기술 분야에서 최소 두 번의 도전을 허용하는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실패한 연구자도 다시 설 수 있어야 인재는 위험을 감수한다.
셋째, 대학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모든 대학이 AI 최상위 연구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곳은 이론, 어떤 곳은 응용, 어떤 곳은 현장 중심으로 기능 분화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모두가 ‘AI 간판’만 내걸면 인재는 흩어지고 깊이는 사라진다.
AI 인재 양성을 위한 과제 의대 쏠림을 비판하기 전에 공대를 선택해도 국가가 함께 간다는 신호를 먼저 줘야 한다. 선택은 개인이 하지만, 구조는 국가가 만든다. AI 학과 지원자 증가라는 작은 변화는 기회다. 이 신호를 제도와 경로로 키울 수 있느냐가 한국의 미래를 가른다.
인재는 타이밍을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다. 의대에 몰린 나라로 남을 것인가, 공대에 미친 나라로 방향을 틀 것인가는 지금의 설계에 달려 있다. 지금이 그 갈림길이다.
김준술 방송총괄국장 joonsoolkim@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