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집단소송법 제정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6.1.13 [사진=연합뉴스] 쿠팡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반복되면서 보다 실질적인 피해자 구제제도의 대안으로 집단소송법이 대두되고 있다. 그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과징금과 사과문이 뒤따랐지만, 개인이 체감하는 배상은 늘 제한적이었다. 최근 소비자·시민사회가 집단소송법을 전면에 꺼내 든 배경에는 이 같은 배상 구조가 사실상 고착화됐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 등으로 구성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19개 단체는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 제정연대’ 출범을 선언했다. 이들은 최근 쿠팡 개인정보 유출 논란을 계기로, 집단소송법 제정을 상반기 내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 대가는 고작 10만원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손해 입증이 어려운 피해자를 위해 법정손해배상 제도를 두고 있다. 법원이 최대 300만원 범위에서 상당한 금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한 장치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이 상한이 사실상의 기준선처럼 작동해 왔다.
카드사·통신사·온라인 플랫폼 등 대형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서 법원이 인정한 1인당 배상액은 대체로 10만원 안팎이다. 불법성은 인정되지만, 피해자가 체감할 만한 수준의 배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반복돼 온 이유다.
이 같은 현실은 최근 쿠팡 사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논란 이후 피해자 1인당 5만원 상당의 쿠폰 지급 방안을 제시했다가 반발을 산 것도, 법원이 그간 인정해 온 배상 수준을 감안해 최소 비용으로 사태를 봉합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업이 법원의 배상 기준과 소송 구조를 계산해 대응하는 전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수 피해를 개인 소송에 맡긴 제도, 해외는 왜 바꿨나
현행 민사소송 체계는 개인정보 유출처럼 피해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사건에서도 개인이 직접 소송에 참여해야 하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공동소송이나 선정당사자 제도가 존재하지만, 소송 비용과 시간, 입증 부담을 감안하면 실제 참여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법원의 판단과 배상은 소송에 참여한 일부 피해자에게만 미치게 된다. 피해 규모가 커질수록 기업이 부담하는 민사 책임의 총액은 오히려 제한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불법성은 반복적으로 확인되지만, 기업의 비용 구조를 바꾸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외 주요국들이 이 구조를 한계로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연합(EU)은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적격단체가 소비자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고, 개인정보 분야에서도 비영리단체가 정보주체를 대리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다수 피해를 개인 선택에 맡기기보다, 집단적 책임을 먼저 확정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독일 등 일부 국가는 공통 쟁점을 먼저 판단한 뒤 개별 구제로 이어지는 절차를 도입했다. 미국 역시 자동 참여(옵트아웃)형 집단소송과 증거개시 제도를 통해 기업의 사후 책임을 강하게 묻는다. 소송 남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정보 보호와 내부 통제가 경영 판단의 핵심 리스크로 작동하게 만든 효과는 공통적으로 인정된다.
집단소송법, 자동 참여가 바꾸는 계산식
집단소송법의 핵심은 배상 액수를 키우는 데 있지 않다. 책임을 판단하는 방식과 그 효력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특히 피해자의 자동 참여(옵트아웃)에 있다.
자동 참여가 허용되면 피해자는 별도의 신청을 하지 않아도 소송 결과의 보호를 받는다. 지금처럼 ‘소송에 참여해야만 배상받는 구조’가 아니라, 빠지지 않는 한 함께 구제되는 방식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가장 체감되는 변화다.
이 구조가 작동하면 기업의 계산식도 달라진다. 더 이상 ‘소송에 나선 사람에게만 배상하면 된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그동안 사태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터진 후 반발 여론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소송 참여를 억제할 대관·대언론에 기형적으로 무게를 뒀다.
집단소송법이 만들어져 자동 참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위법 판단이 내려질 경우 전체 피해를 기준으로 한 책임을 고려해야 하고, 개인정보 보호는 사후 봉합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투자와 내부 통제의 문제로 이동한다. 대관이나 대언론보다 실질적인 보안인력 확충과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는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집단소송법의 실효성 여부가 결국 자동 참여 구조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피해자가 별도의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도 구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집단소송이라는 이름만 붙은 공동소송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개인 피해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표당사자나 적격단체가 소송을 주도할 수 있는 구조, 그리고 개인정보보호법상 손해배상·배수 배상 규정이 집단소송 절차에서도 실제로 작동하도록 하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집단소송법은 책임 범위를 넓히기보다, 기존 소송을 조금 묶어놓은 제도에 머물 수 있다는 평가다.
아주경제=박용준 기자 yjunsay@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