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휴머노이드 AI, 빠른 추격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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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뷰]휴머노이드 AI, 빠른 추격자의 함정
A robot demonstrates a combat performance at the booth of Chinese robotics company Unitree at the Las Vegas Convention Center LVCC during the second day of CES 2026 in Las Vegas Nevada on Jan 7 2026 local time Yonhap'CES 2026'에 전시된 권투하는 로봇 이미지[사진=연합뉴스]
올해 'CES 2026'는 휴머노이드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의 각축장이었다. 2년전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경험했던 휴머노이드 AI는 간단한 잡담을 나누거나 춤을 추는 '재롱꾼' 혹은 '반려봇' 존재감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복싱, 백덤블링 등 인간이 하기도 어려운 움직임을 척척 소화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로봇이 가사에 투입되거나 제조 공장에서 무거운 장비를 나르는 모습은 인간 고유의 영역인 '노동 현장'에 완벽히 스며든 모습이었다. 내년에는 또 어떤 휴머노이드 AI가 등장할지 벌써 등골이 오싹하다.
 
기업들이 수놓은 기술 향연의 뒤에는 국가 간 휴머노이드 AI 경쟁이 있다. 휴머노이드 AI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한 로봇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좋은 로봇을 만드느냐"가 아닌 "누가 미래 사회의 기본 운영 질서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가깝다. 반도체, 로보틱스, 에너지, 국방, 노동, 윤리 등 거의 전 영역에서 차세대 문명 인프라의 주도권을 만들어가는 작업인 셈이다.
 
만년 '2등 국가'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데이터 결합을 통해 휴머노이드 AI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압도적인 양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중화 전략이다. 다양한 산업용 로봇을 빠르게 보급하고, 실사용 환경에서 학습시켜 일상으로 빠르게 침투시키는 방식이다. 실제 이번 CES에 참가한 휴머노이드 로봇 전시 기업 중 60% 이상이 중국 기업이었다.

미국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생태계 지배 전략을 취하고 있다. 거대 언어모델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앞세워 휴머노이드의 '두뇌'를 장악하겠다는 복안이다. 미국에 있어 로봇을 누가 잘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과 중국이 로봇을 아무리 찍어내도, 그 로봇의 두뇌인 소프트웨어는 자신들이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휴머노이드 AI 산업에서 미국은 서사를, 중국은 제조 주도권을 완성해가는 상황에서 한국만 또 추격자 위치에 머물러 있다.
 
산업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한국의 '오만함'이 휴머노이드 AI 산업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강국이면 AI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믿음, 과거처럼 빠르게 따라가면 된다는 안일함, 민간 기업이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다. 휴머노이드 AI는 데이터와 학습, 생태계 선점 효과가 극대화되는 산업으로, 패자부활전이 없다. 늦을수록 격차는 공고해진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조선·플랜트 등 고난도 제조 현장,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돌봄과 의료 보조, 재난과 안전 대응과 같은 실전형 분야에 강하다. 범용 휴머노이드가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휴머노이드에 강하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형 휴머노이드 두뇌'가 필요하다. 아울러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 휴머노이드 AI는 실패를 전제로 한 실험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규제 부담을 낮춘 실증 구역, 군·소방·의료 등 공공부문에서의 선제적 도입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등은 모두 국가가 휴머노이드 AI의 가장 큰 초기 수요자 역할을 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AI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부품이나 공급하는 하청 국가로 남을 것인가, 작지만 독자적인 휴머노이드 강국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한국은 이미 '빠른 추격자의 함정'을 경험했다. 2026년은 방향과 속도를 정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주경제=한지연 기자 hanj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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