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림 인간' 최강록이 재고(在庫)가 된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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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림 인간' 최강록이 재고(在庫)가 된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

셰프에게 요리는 타인의 미각을 위한 복무(服務)다. 자신의 욕망을 지우고 타인의 만족을 채워야 한다. 이 때문에 자아는 늘 주방 뒤편으로 물러나고, 오직 손님을 위한 결과물만이 식탁의 전면에 나선다.


지난 13일 끝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는 이 견고한 불문율을 깨뜨렸다. 우승자 최강록이 마지막 접시 위에 담아낸 것은 경쟁자를 꺾기 위한 비장의 무기가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질식해가던 '자기 자신'이자,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내리는 이 땅의 수많은 자영업자가 지닌 '그림자'였다.


"척하며 살았습니다"…버려질 재료들이 건넨 투박한 헌사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습니까?" 최강록은 심사위원의 물음에 시선을 떨군 채 한동안 침묵했다. 이내 더듬거리며 뱉어낸 말은 변명이 아닌, 요리사로서의 깊은 자기 고백이었다.


"저는 조림 인간입니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잘하는 척했습니다. 공부도, 노력도 했지만, 그 '척'하기 위해 살아왔던 인생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



투박한 독백은 진심이었다. 식자재를 선택했을 때부터, 개인의 고백을 넘어 이 시대의 고단한 노동자들을 향한 거대한 은유로 확장됐다. 주방에서 남겨진 것들을 냄비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호박잎과 다시마는 본래 생선의 감칠맛을 위해 희생되고 버려진다. 육수의 베이스가 된 닭 뼈 역시 살코기라는 '상품'을 다 내어주고 남은 앙상한 잔해다. 여기에 추가된 성게알(우니)은 자영업자의 불안을 상징한다. 하루 이틀만 지나도 선도가 꺾여, 손님상에 내지 못하면 주인이 억지로 삼켜 없애야 하는 '재고(在庫)'의 운명이다.


압권은 두부였다. 차갑게 굳혀 식감을 즐기는 깨두부(고마도후)를 그는 뜨거운 탕에 풀어버렸다. 팔다 남아 차게 식은 두부를 국물에 데워 허겁지겁 넘기는, 마감 뒤 텅 빈 식당의 쓸쓸한 풍경을 연상케 했다.


최강록은 이처럼 쓸모를 다한 재료들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한 그릇으로 되살려냈다. 버려질 뻔한 재료들을 다시 끓여냄으로써, 타인을 위해 '척'하느라 닳아버린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뜨겁게 안아준 것이다. 심사위원들이 맛본 것은 단순한 미각의 균형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가 자신을 보듬는 고단한 밤, 그 끝에 찾아온 뭉근한 위로의 맛이었다.


소모품의 시대…'증명' 대신 '본질'을 택하다

현대인들은 '증명'의 강박에 갇혀 있다. 편집된 타인의 삶에 절망하고, 낙오하지 않으려 과장된 행복을 연기한다. 이 숨 막히는 피로 사회에서 최강록은 역설(逆說)을 택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결핍을 고백했고, 외면받던 재료들을 주저 없이 끌어안았다. 화려하지 않아도, 비록 쓰임새를 다해 남겨졌더라도, 시간을 들여 뭉근히 졸여내면 그 자체로 깊은 맛을 낸다는 사실을 묵묵히 보여줬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그는 환호작약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전국에 이렇게 숨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요리사분들, 음식을 만드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


겸손을 가장한 수사가 아니었다. 도마 앞에서는 우승자도 탈락자도 없이, 오직 요리라는 고된 노동을 감내하는 동료들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최강록은 알고 있었다. 덕분에 '계급 전쟁'이라는 치열한 경쟁의 서사는, 승패를 넘어 서로의 땀방울을 인정하는 뜨거운 존중의 무대로 아름답게 마침표를 찍었다.


시청자들은 그를 통해 확인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척'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비록 오늘 하루가 재고처럼 남겨졌을지라도,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조림 인간' 최강록이 이 땅의 모든 고단한 영혼들에 건네는, 투박하지만 가장 진실한 헌사(獻辭)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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