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진 않았어요. 오히려 전보다 더 자주 먹었죠.”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한 임상시험실. 참가자 중 한 명은 실험 종료 뒤 이렇게 말했다. 다이어트라는 말을 꺼내기엔 어색한 식단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지도 않았고, 운동 계획이 추가된 것도 아니었다. 바뀐 건 단 하나, 가공식품을 식탁에서 치운 것뿐이었다.
가공식품을 줄이고 채소·콩·통곡물 위주로 구성한 식단을 적용한 임상시험에서 참가자들의 체중과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3주 만에 동시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 3주가 지나자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체중이 줄었고, 혈당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동시에 내려갔다. 숫자가 먼저 반응했다. ◆“덜 먹지 말고, 덜 가공하라”
18일 생명과학 학술지 세포(Cell)에 발표한 다국적 협업 연구에 따르면 이번 실험의 핵심은 ‘제한’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하루 섭취 열량을 이전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했다. 대신 먹는 음식의 성격을 바꿨다. 즉석식품, 가공육, 설탕이 들어간 간식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소·콩·통곡물이 채웠다.
고기와 생선은 완전히 끊지 않았다. 하루 한 끼 정도는 소량 허용됐다. 대신 밀가루와 유제품, 소고기는 식단에서 빠졌다. 연구진은 “장에 가장 빠르게 부담을 주는 식품군”이라고 설명했다. 실험 참가자 중 상당수는 “처음 며칠은 심심했지만, 배는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 체중보다 먼저 변한 건 ‘장’
3주 뒤 검사 결과는 분명했다.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평균 17% 감소했고, 혈당 수치는 6% 낮아졌다. 염증 반응을 보여주는 지표도 눈에 띄게 내려갔다. 체중 역시 별도의 감량 지시 없이 감소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건 체중계 숫자보다 장 속 변화였다. 가공식품이 줄자 장내 미생물 구성이 빠르게 달라졌다. 섬유질을 분해하는 균이 늘었고, 염증과 연관된 균은 힘을 잃었다.
연구 관계자는 “장내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바뀐다”며 “3주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시골 밥상’에서 힌트를 얻다
연구진이 참고한 건 최첨단 식단이 아니었다. 산업화 이전 식생활, 이른바 ‘시골 밥상’이었다. 채소와 뿌리식물, 콩과 곡물이 중심이고 가공 과정이 거의 없는 식사 방식이다.
이를 현대 식생활에 맞게 조정했다. 아침엔 고구마나 콩 요리, 점심엔 채소 위주의 식사, 저녁엔 감자와 살코기 정도. 화려하지 않지만, 장이 가장 안정적으로 반응하는 조합이다.
식이섬유 섭취량은 기존 식단의 2~3배 수준이었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화장실 리듬이 먼저 달라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식이섬유 중심의 전통 식단으로 전환하자 장내 미생물 구성이 달라지며 염증 지표와 대사 위험 수치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 연구진은 특정 유익균을 함께 섭취하도록 했다. 가공식품 위주의 생활 속에서 사라졌던 균이지만, 전통 식단을 유지하는 지역에선 여전히 흔한 균이다. 식단이 바뀌자 이 균은 장에서 자리를 잡았고, 염증과 관련된 유전자 반응은 줄어들었다.
연구를 이끈 책임자는 “우리는 늘 다이어트를 ‘얼마나 줄이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왔다”며 “하지만 이번 결과는 ‘무엇을 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시 확인된 결론, 시작은 ‘식탁’이었다
이번 실험이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몸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새로운 약도, 극단적인 식단도 아니다. 가공식품을 덜어내는 것, 그 하나로도 몸은 충분히 반응했다.
연구진은 실험에 사용된 식단을 일반인도 따라 할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다. 결국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었던 밥상, 그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