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주둔 군사력 증강에 나선 유럽 8개국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동맹국이 실효지배 중 영토를 공개적으로 병합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유럽 지역의 핵심 동맹국들에 사실상의 ‘보복관세’를 선언한 것이다. 1949년 출범 이후 77년간 유럽 안보를 지탱해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매우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국가들은 감당할 수 없고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초래했다”며 최근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병력을 추가 파견한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8개국을 대상으로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강력한 조치를 취해 이 잠재적 위험 상황이 의문의 여지 없이 신속히 종결되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2026년 2월1일부터 위에 언급된 모든 국가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모든 상품에 10% 관세가 부과된다. 2026년 6월1일에는 관세가 25%로 인상된다”며 “이 관세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purchase)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집권 2기 취임 이전부터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를 그린란드에 파견하는 등 병합 의사를 노골적으로 피력해왔다. 이후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거부 의사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병합 의지를 꺾지 않자 덴마크와 유럽 국가들도 본격적인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지난해 9월 미국을 제외한 나토 국가들만으로 그린란드에서 ‘북극의 빛 2025’ 연합훈련을 했고, 지난 15일에는 그린란드 방어 강화를 위해 병력을 추가로 보냈다. 파병 규모는 소규모였지만 미국을 향한 일종의 ‘무력시위’라는 해석이 나왔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동맹국들에 보복관세 카드를 꺼내며 이들 국가에 분노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과 “즉각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며 향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날 선언에서 “미국이 그린란드 인수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라고 단서를 달아둔 것도 유럽 국가들이 그린란드 협상에 서둘러 나서도록 유도해 유리한 고지를 선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유럽은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나토 동맹국들이 집단 안보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동맹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엑스(X)에 “관세 위협을 용납할 수 없고 지금 상황에 맞지도 않는다. 이 위협이 확인될 경우 유럽인들은 단합해 조율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적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우리는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며 “(관세 부과 대상으로) 지목된 나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많은 나라들이 관련된 문제다. 다른 유럽연합(EU) 회원국, 영국, 노르웨이와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유럽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린란드 수도 누크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수천명이 참가하는 그린란드 병합 시도 반대 시위가 열리는 등 유럽 내 반미감정도 격화되는 양상이다. 축구 강국 독일의 여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외교정책 대변인 위르겐 하르트가 하루 전 현지 언론에 “비현실적인 갈등과 동시에 열리는 축구 축제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며 올해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북중미 월드컵 보이콧 가능성까지 거론했을 정도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유럽 간 갈등은 나토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다. 나토는 미국과 유럽이 손잡고 집단 안보를 핵심으로 한 군사동맹인데, 내부 겨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나토 동맹국들이 서로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단 대화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그린란드 문제가 가장 민감한 외교 사안인 영토·안보와 직결돼 있어 쉽게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엑스에 “중국과 러시아가 신이 날 것이다. 동맹국 간 분열로 이익을 보는 쪽은 바로 그들”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