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에서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불법 이민 단속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이 진행한 이번 단속에서 300여명의 한국인 전문 기술 인력이 구금됐다. 이는 단일 공장 기준 최대 규모 단속으로, 한미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신뢰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번 프로젝트는 총 76억달러(약 10조원) 규모로, 수천 개의 지역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전략적 투자가 이민 단속과 충돌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잘 보여준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투자 협력이 진행될 예정인 만큼, 양국 모두 긴밀한 협력 속에서 제도적 불확실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배터리 산업 생태계가 아직 성숙하지 않아 숙련 인력의 수급이 쉽지 않다. 핵심 기술 보호와 생산 수율 확보를 위해 기업들은 본사 및 협력업체의 전문 기술 인력을 직접 파견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공장 역시 단순 건설이 아닌 제조설비 설치·시운전 단계였고, 이는 대규모 숙련 기술 인력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단속은 현장의 실제와 괴리가 크다.
구금된 인력 대부분은 무비자가 아닌 B-1 비자나 ESTA를 소지한 입국자였으며, 임무 종료 후 귀국이 예정된 직원들이었다. 그러나 현행 미국 비자 제도는 이러한 단기 전문 인력의 필요성을 제도적으로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관행적으로 용인되던 방식이 트럼프 2기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와 맞물리면서 이번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필수 전문 인력을 불법 체류자로 간주하고 단속 영상을 공개한 것은 투자 기업의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 미국이 제조업 르네상스와 글로벌 공급망 리더십을 지향한다면 전략적 투자와 이민 정책이 충돌하지 않도록 균형 있는 법 제도 마련과 집행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의 신뢰와 리더십을 지키는 데도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구금된 인력들은 배터리 제조라인 구축에 필수적인 핵심 인력으로, 앞으로도 재입국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복수의 배터리 투자 프로젝트의 차질을 막는 데 긴요하다.
둘째, 단기적으로는 B-1 비자와 ESTA의 운용을 보다 유연하게 적용해 기업과 기술 인력의 불안을 줄일 필요가 있다. 특히 B-1 비자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이 가이드라인을 국무부와 국토안보부 등 관계 당국이 일관되게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한미 양국 간에 투자 프로젝트 전담 비자 협의체를 신설해 심사 기간 단축, 입국 거부 사례 축소 등 실질적 개선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전문 기술인력과 관련한 한미 비자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미국 의회의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현재 영 킴 의원이 발의한 한국인 전용 전문직 비자 법안은 초당적 합의를 통해 조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산업 특성을 고려한 협력업체 전문인력의 단기 파견 전용 비자 제도도 협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불합치에서 비롯된 구조적 과제라 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이 상호 신뢰 속에서 조율을 거듭한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사상 최대의 투자 협력은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새로운 토대가 될 것이다. 이번 경험이 양국 모두에게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