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주식시장은 시험지가 아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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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주식시장은 시험지가 아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신호

50억원이냐, 10억원이냐. 한 달이 넘도록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았던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논란이 또다시 증명한 게 있다. 바로 '시장은 기대에 따라 움직인다(Markets trade on expectations)'는 월가의 오랜 격언이다.


어차피 대주주 양도세 기준은 현행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낮춘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10~11월께 매도를 통해 충분히 세금 회피가 가능한 구조였다. 중요한 건 숫자(세율)가 아닌,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었던 셈이다.


결국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10억원안 철회'를 시사한 이재명 대통령조차 이번 사태를 두고 "주식시장 활성화 의지를 시험하는 시험지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기획재정부 추계와 달리 세수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은 일단 차치하고서 말이다.


이제 시장의 눈길은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쏠린다. 앞서 정부가 공개한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최고세율은 당초 논의됐던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의 25%가 아닌 35%였다. 이에 시장에서는 배당 확대 유인이 확연히 떨어진다며 대주주 양도세 기준만큼이나 투자자 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 또한 실질적인 배당 확대를 위해서는 세율을 25%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나마 주식시장에 반가운 점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주 회견에서 배당소득 분리과세 문제도 직접 언급했다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은 관련 비판을 의식한 듯 "세수에 큰 손실, 결손이 발생하지 않으면 최대한 배당을 많이 하게 하는 게 목표"라며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대주주 기준을 계기로 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한 차례 의구심을 가지게 된 시장은 이제 또 한 번 새 정부의 정책 일관성을 확인하고자 할 것이다. 당장 이번 사태만 해도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어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우선순위를 확인했다곤 하나, 모든 정책을 아우르는 일관성 측면에선 오락가락, 우왕좌왕 행보를 보인 게 사실이다. 더욱이 양도세 대주주 요건에서 한발 물러나는 대신, 보완책으로 세입 측면의 장기적 로드맵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정부 시행령 건이라 당장 확답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이 대통령이 '국회에 맡기겠다'고 둘러서 표현한 이유도 이로 인한 조세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갓 출범한 새 정부로선 민망한 헛발질이다.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정책적 지원을 일정 수준 받아들이는 추세다.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부가 목표·수단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추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최근 정부가 반도체 기업과 수출 및 이윤 공유 약속을 한다거나, 기업 지분참여, 특정 기업 결정에 대한 우선권 확보 시도 등의 전략적 개입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도 '코스피 5000'과 같은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세제·연기금 운용·규제 개혁을 일관된 로드맵에 따라 설계·집행할 필요가 있다. '이래서 국장은 안 된다'는 말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 오락가락·우왕좌왕하는 정책 기조는 정부의 어설픔만 드러내고 시장의 신뢰를 뒤흔들 뿐이다.






조슬기나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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