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트럼프가 던진 '동맹 현대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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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트럼프가 던진 '동맹 현대화' 과제

한미 정상회담의 주된 화두 중 하나는 한미간의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였다. 단어 뜻 자체만 놓고보면 미국과의 동맹체제를 현재 상황에 맞춰 바꾼다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들이 숨어있다. 현대화란 단어가 미국의 동맹 당사국 입장에서 조약체제부터 방위태세 전반을 미국의 기준에 맞춰 현대화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유럽 등 미국과 동맹인 나라들 전체에 이 현대화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과제는 크게 군비증강과 방위전략 변경으로 나뉜다. 이에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부터 우리나라까지 모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과제가 먼저 떨어졌다.


국가 방위전략의 현대화 과제는 지역별 사정에 따라 다르다. 유럽에서는 2020년 이미 1만1900명 감축돼 3만5000명 정도 남아있는 주독미군을 추가로 감축하고, 이중 상당수를 폴란드로 전진배치하는 전략 변화가 검토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주일미군사령부를 하와이의 미군 태평양사령부와 통폐합해 대만해협에서의 전쟁억지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핵심 혈맹인 한국에는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들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넘어온 과제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화' 만으로도 벅차다. 그동안 한미상호원조조약에 따라 한반도 방위에 전념하던 주한미군이 인도·태평양지역 분쟁에 보다 광범위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우리 정부가 이를 수용하게 되면 현재 2만8500명 규모의 주한미군은 역내 안보상황과 미국의 필요성에 따라 주독미군처럼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하는 과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유연화와 함께 대중국 억지력 강화에 보다 많은 참여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미국의 '잠정 국방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에는 "인도·태평양 지역 미국 동맹국들은 각자의 구역에서 중국의 위협을 방어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한다"며 "향후 중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동맹국들도 자구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전략에 따라 한국은 이미 미국과 일본, 인도, 호주의 대중국 견제 군사협의체인 쿼드(QUAD) 참여 요구를 받고 있다. 중국과의 경제·안보적 관계를 고려해야하는 한국 입장에서 쿼드 참여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쿼드에 참여하게 되면 당장 중국과 미국, 중국과 대만의 관계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의 군사적 긴장감도 함께 올라가고 경제도 지속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동안 국토방어에 맞춰져있던 우리나라의 안보 전략도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하다. 휴전선 인근 북한의 크고 작은 군사도발에 집중하던 전략과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중국의 해상도발을 막는 전략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당장 정보수집 지역 확대를 위해 다수의 군사위성,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훨씬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하고, 함대의 작전범위나 원양 능력 확장을 위해 최신 무기와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작업이다. GDP 대비 2.3% 수준인 국방비를 2배 이상 끌어올린다 해도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해도 우리가 곧바로 할 수 없는 과제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국방예산, 대외관계 등 모든 측면의 국익을 고려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라면 받지 말아야한다. 이번 정상회담 전후 아직 구체적인 동맹 현대화 방안들이 미국 쪽에서 제시되진 않은만큼, 선제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히 구분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확실히 거절해야할 것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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