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으로 한미 관계가 개선된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관세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둘러 나쁜 합의를 하기보다는 앞으로 논의를 지속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협상 지속이 '뉴노멀'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미 관세 협상 전략은 어떻게 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입장이 같은 한일이 긴밀하게 협력해 공동대응함으로써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한일 간 경쟁심리를 잘 알고 있고 이를 관세 협상에 널리 이용해 왔다.
지난 4월 관세 협상이 본격화된 이후 미국은 상대국들이 서로 협의해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즉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이용했다. 미국과의 협상을 먼저 타결하면 유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불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면 괘씸죄를 붙여 무지막지한 불이익을 보게 될 것이란 얼음장을 놓아 상대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최악의 패를 잡은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다. 트럼프 1기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성공사례를 재현하기 위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전면적인 관세철폐를 목표로 미측과 제일 먼저 협상에 돌입했으나 트럼프 구상에 맞지 않는 목표치 고수로 인해 미측이 퇴짜를 놓았다. 참의원 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린 이시바 총리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이 필요했고 협상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관세 협상에서 소외돼 있던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매달려 어처구니없는 5500억 달러 대미 투자(펀드)를 트럼프가 발표한 것이다. 정치적 코너에 몰린 일본은 죄수의 딜레마 구조보다 더 나쁜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대신 러트닉 장관은 특종을 터뜨리게 됐다.
미국은 자국이 맘대로 투자처를 결정하는 5500억 달러 펀드라고 했고 수익의 90%를 미국이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이를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미국의 문서화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문서화 없이 애매하게 놔두는 것이 정치적으로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내 비판과 반발이 커지자 지난주 입장을 바꿔 합의 내용을 미측과 협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하려던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돌연 취소했다. 한국의 대응이 참고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신 실무자들을 보내 탐색전을 갖기로 했다.
한미 첫 정상회의를 3시간 앞둔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이 '숙청·혁명' SNS 문자에 이어 교회 급습과 미군 압수수색 등을 언급하고 정상회의를 지연시킨 이면에는 한국 측을 흔들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에 대한 문서화 목표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이 문서화하면 일본도 어쩔 수 없이 문서화하게 된다. 이는 러트닉 상무장관이 언론에서 언급한 '9000억 달러 경제안보펀드'를 만들어 미국 인프라 구축에 활용하는 구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을 수반하는 의무를 한일이 질 수는 없다.
EU는 순수 기업 투자 6000억 달러를 미-유럽연합(EU) 공동선언문을 통해 문서화했고 한국과 일본만이 미국에 펀드성 투자를 하기로 했다. 기업 투자 1500억 달러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대미 투자액은 5000억 달러로 일본의 5500억 달러와 별로 차이가 없고 다른 통상현안에서도 사실상 같은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한일은 문서화에 있어 미국이 추진할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게임의 이해관계가 이미 공개됐고 입장이 유사한 한일이 정보를 제대로 공유해도 협상의 구도가 달라지게 된다. 여러 측면에서 EU는 미국과 무난한 협상을 했다. 그 내용을 정밀분석하고 일본과 함께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