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막힌 서민들] 가계부채 자영업자 폐업 증가…한국 경제 불안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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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막힌 서민들] 가계부채 자영업자 폐업 증가…한국 경제 불안 키운다
소득?신용 이유 대출 어려워지자 목돈 구하기 위해 전당포로 향해 소상공인, 자금난에 가게 문 닫아 개인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
서울 종로구 일대 전당포 모습. 전당포에선 신분증만 있으면 빠르게 뭉칫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지면서 대부업자의 경영 악화로 종로 일대 전당포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노성우기자
“최근에도 다른 업자가 주기로 한 (공사) 기성금을 못 받아서 금팔찌 50돈을 맡기고 2000만원을 빌려갔던 사람이 있었죠”

지난 29일 오후 1시 7분 서울 종로구의 한 전당포. 제1?2금융권에서 인건비나 노무비, 임대료 등에 쓸 목돈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찾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전당포다. 관할 구청에 대부업 등록을 한 전당포는 고가의 물건을 담보로 잡고 법정 최고이자율 연 20% 내에서 돈을 빌려준다. 이 곳에선 쉽게 말해 신분증 하나만 있으면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출 절차 없이 빠르게 뭉칫돈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대부업 법정금리가 낮아지면서 종로 일대 전당포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관현악기 수리를 전문으로 하면서 부업 삼아 전당포를 한다는 주인 A씨는 “전당포가 거의 사라졌지만 돈이 급한 사람들은 여전히 금이나 목걸이 등을 들고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귀금속은 시세의 최대 80%까지 돈을 빌릴 수 있어서다.

당장 생활비나 병원비에 쓸 급전이 필요하지만 소득이나 신용 등이 낮아 제도권 대출이 어려운 젊은이들도 전당포의 문을 두드린다.

A씨는 보름 전쯤 마틴?깁슨 같은 종류의 브랜드 통기타를 맡기고 간 30대 젊은 남성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 남성은 편찮은 부모님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기타를 맡기고 갔다고 한다.

전당포 주인은 “통상 중고 가격이면 100만원 정도 나오는 물건인데 흠집이 좀 있어서 50만원밖에 못 쳐줬다”고 회상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경고음이 울리는 가운데 한층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사금융까지 내몰리는 서민들이 적지 않다.

30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3월 말보다 24조6000억원이 증가한 1952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02년 4분기 관련 통계 공표 이래 가장 많은 규모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은행, 보험사, 대부업체 등에서 받은 대출(가계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을 합한 포괄적 가계부채를 가리킨다.

소상공인의 대출 부담도 커지고 있는데, 한국신용데이터(KCD)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의 대출 잔액은 약 719조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원가량 불었다.

가계부채 증가와 함께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개인 사업자 수도 급증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차주 중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16만1200명가량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말 5만1045명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여기서 말하는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 개인 명의로 사업자 대출을 받은 이들을 가운데 3개월 이상 대출상환을 연체한 차주 등을 뜻한다.

경기 침체와 대출 부담 등 이?삼중고에 결국 가게 문을 닫는 소상공인들도 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올해 1~4월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 지급 규모는 607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11.6%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코로나19 당시인 2020년 같은 기간(2635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노란우산은 소기업·소상공인의 목돈 마련 제도로 폐업·노령·재난 등 사업주들이 겪을 수 있는 생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공제 제도다.

박명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 폐업 증가 및 대출 부담 등과 관련해 “폐업하기 전에 어떻게든 자금을 융통해 가게를 끌어갈 노력을 했을 텐데, 폐업을 한다는 건 개인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사진 노성우 기자 sungcow@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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