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의지를 재차 분명히 했다. 동시에 “사상과 제도가 다른 국가”와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지를 보인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차관)은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우리는 국법이고 국책이며, 주권이고 생존권인 핵을 절대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에게 비핵화를 하라는 것은 곧 주권을 포기하고 생존권을 포기하며 헌법을 어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절대로 주권 포기, 생존권 포기, 위헌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7년 만에 유엔총회 대표단 파견 김선경 북한 외무성 부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일반토의 연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뉴욕=AP뉴시스 비핵화는 강하게 거부하면서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 민족들과 사상과 제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협조할 것”이라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그는 교류, 협력의 전제로 북한을 “존중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제시했다.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상의 이날 연설은 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나온 김 위원장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한다. 김 위원장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좋은 추억”을 언급하며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린다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 부상이 이날 연설에 유엔 개혁 요구를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주목된다. 이달 초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며 북·중·러 공조를 강화한 것을 토대로 ‘정상국가’로서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김 부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서방주도의 불합리한 구도를 바로잡는 것은 특정 세력들의 강권과 전횡을 막기 위한 필수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고위급 대표가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중 연설한 것은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인 2019년부터 작년까지는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김 부상은 연설을 마친 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한반도 및 주변 지역 상황을 논의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난 것은 2018년 리용호 당시 북한 외무상 이후 처음이다.
한국 외교부는 김 부상의 연설과 관련해 비핵화 기조를 이어 갈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이재명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 행위 의사 부재 세 가지 원칙 아래 긴밀한 한·미 공조 하에 포괄적인 대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민주·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