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러트닉 올인'에 꼬여 버린 한미 관세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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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러트닉 올인'에 꼬여 버린 한미 관세 협상

"정부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 "


한미 관세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7월 한 전직 통상 관료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이전 정부가 전략적으로 거리를 뒀던 러트닉이 새 정부 출범 직후 협상 카운터파트로 급부상한 상황을 우려했다. 가뜩이나 보호무역을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의 협상 자체가 고차방정식인데, 여기에 힘의 논리로 상대를 거칠게 압박하는 러트닉 특유의 스타일까지 겹치면서 "협상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7월 말 한미 무역 합의 발표와 달리 협상은 교착 상태다. 최대 난제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 방식이다. '관세 폭탄'을 피하려는 한국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낸 인물도, 정부의 불가론에도 현금 투자 확대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인물도 바로 러트닉이다.


러트닉을 관세 협상의 전면에 세운 건 역설적이게도 한국과 일본이었다. 미국의 무역 협상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러트닉이 주도한다. 러트닉은 무역 정책 강경파로, 같은 월가 출신이지만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 베선트에 가려 초반에는 존재감이 약했다. 이후 일본·한국과의 연이은 무역 합의 타결이 그의 입지를 넓혔다. 일본은 관세 인하와 맞바꿔 55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한국도 이를 '모범답안' 삼아 유사한 합의를 추진하며 러트닉의 영향력을 키워준 셈이 됐다.


현재 협상 난항의 원인은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동맹국조차 코너로 몰아붙이는 미국의 과도한 요구다. 다만 정부의 대응이 전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매파인 러트닉과의 협상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에 직면했다. 그는 한국 장관을 워싱턴에서 뉴욕, 스코틀랜드로 연이어 불러내며 고압적으로 협상을 끌고 갔다. 무역 구조가 유사한 한국과 일본의 경쟁 구도를 노골적인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보다 더 트럼프 같은' 인물을 협상 상대로 집중한 것 자체가 리스크였다.


정부의 상황 판단도 문제였다. 합의 직후부터 대미 투자와 농산물 개방 등에서 한미 간 시각차는 뚜렷했다. 트럼프는 협상 타결 뒤 한국의 투자를 두고 "미국이 소유·통제하고 투자처도 미국이 결정한다"고 못 박았다. 이는 정부가 주장해 온 보증·대출 투자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뉘앙스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정부가 이를 국내 정치적 수사로 축소 해석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식 합의문도 없었다. 우리 측 비망록과 미국 측 양해각서(MOU)가 크게 달랐던 점은 뒤늦게 부메랑으로 날아왔다.


3500억달러 현금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언급한 "탄핵" 사유, "외환위기" 가능성은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협상 판을 깨고 25%의 자동차 관세, 뒤이을 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한 초고율 관세를 감수할 수도 없다. 결국 미국과의 '동상이몽'식 합의에도 성공적 협상이라고 오판한 정부가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생존 문제다. 정부는 이제라도 대미 협상 전략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러트닉 올인 전략에서 벗어나 협상 지형을 다변화하고, 소고기·쌀 시장 개방 등 '레드라인'으로 설정했던 카드까지 테이블에 올려 협상 공간을 넓힐 필요가 있다. 협상 실패를 미국 탓으로 돌리는 건 쉽지만, 반미 감정을 자극해 얻을 실익은 없다. 미국 경제는 여전히 견조하고 트럼프 역시 관세 정책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다. 어려운 국면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 그게 외교이자 정부의 실력이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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