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앨런 길버트. 그는 “우리 오케스트라는 음악 안에 내재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해석을 강조했다. 빈체로 제공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NDR 엘프필하모니와 함께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무대를 연다. 뉴욕필하모닉에 이어 2019년부터 독일 명문악단 엘프필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앨런 길버트는 1일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2001년 처음 엘프필을 지휘한 후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함께 성장했다. 강렬하고 가까운 관계를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연주자들은 최고 수준을 갖추고 있는데, 함께할수록 점점 더 우리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가장 나다워진다고 느끼고, 단원들 역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 1945년 창단된 엘프필은 권터 반트,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 전설적 지휘자와 함께 독일 교향악 전통을 계승해온 명문악단이다. 세계 주요 콘서트홀에 손꼽히는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을 2017년부터 본거지로 삼으며 중흥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번 내한은 10년 만의 방한으로 조슈아 벨과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그리고 현대 영국 작곡가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를 선보인다.
뉴욕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앨런 길버트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해석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아온 인물이다. 하버드대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공부한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필하모닉 역사상 최초의 뉴욕 태생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담한 프로그래밍으로 화제를 모았다. 엘프필에서도 쇤베르크 150주년 기념 무대, ‘엘프필하모니 비전(Visions)’ 페스티벌 등 현대음악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모든 음악은 하나의 흐름 속에 있다”는 신념 아래 고전 명작과 현대 작품을 같은 무대에 올리며 청중에게 동시대적 울림을 전하고 있다.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는 인식과 일부 클래식 팬만 감상하는 장르로 여겨지며 “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새로운 명곡이 나오지 않는가”라는 질문조차 나오는 상황에서 앨런 길버트는 “현대음악은 단지 더 최근에 쓰인 음악일 뿐, 본질에서 다른 음악과 다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작곡은 가장 어려운 음악 활동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예술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현대음악의 옹호자로 꽤 알려졌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러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관심이 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흥미로운 음악입니다. 프로그램을 짤 때는 서로 잘 어울리며 서로를 비춰주는 작품들을 함께 놓으려 합니다. 현대음악은 다른 음악과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더 최근에 쓰인 음악일 뿐이죠. 오늘날 우리 시대와 자신을 반영하고 청중의 경험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0년 만에 내한공연하는 독일 함부르크 NDR 엘프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 앨런 길버트. 빈체로 제공 한국 초연인 ‘요동치는 바다’에 대해서도 제목만 보면 기후 문제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권한 강화와 사회적 위치를 주제로 한다고 설명했다. 길버트는 “듣기 쉽지만 강렬한 감정적 울림을 전하는 곡”이라며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같은 명작과 함께 어우러져 공연에 특별한 의미를 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라인은 독창적인 목소리와 훌륭한 리듬 감각을 지닌 작곡가입니다. 이미 여러 번 연주했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보편적 가치를 함께 나누게 되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
음악가 집안에서 자란 그는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억지로 음악을 강요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다양한 음악을 즐긴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다.
“음악가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제 여동생과 제가 음악가가 된 것은 당연해 보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죠. 하지만 강제는 아니었어요. 그만큼 음악 쪽으로 강한 흐름과 분위기가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음악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세 자녀가 있는데 자녀들 모두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을 좋아해서 저도 참 기쁩니다. 물론 몇 명은, 아니면 적어도 한 명은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을지도 모르죠. 어떻게 될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고 즐긴다는 점이며 각자가 자신만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음악과 관계를 맺는 것이겠지요.”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