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책…예방책임 부여 -은행연합회, 로펌에 법률 자문…"과도한 조치"
정부가 금융권 등의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금융업권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예방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무과실 배상 책임은 과도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법적 검토에 나섰다. 이러한 조치로 신종 사기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28일 보이스피싱 대책의 하나로 금융회사의 과실 책임이 없더라도 피해액 일부나 전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방안을 올해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TF) 간사인 조인철 의원은 지난달 25일 당정협의를 마친 뒤 “금융회사 등이 피해액 일부 또는 전부를 배상토록 하는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 책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면서 무과실 배상책임제도 도입 추진을 기정사실로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금융사에 범죄 예방 및 대응력 강화를 위한 전담 인력과 물적 설비를 의무화하는 한편, 보이스피싱 의심 정보를 공유·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선제적으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조속히 구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는 은행들이 대출 실행 과정 등에서 본인 확인 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명의를 도용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대출 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고스란히 책임이 떠안는 구조다.
금융당국이 이처럼 칼을 빼 든 이유는 금융 소비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금융사에 강력한 예방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보이스피싱 피해 등을 막기 위한 지원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피해액을 배상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은행이 책임이 없는 부분까지 배상하는 것은 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연합회는 법무법인 화우를 법률자문사로 선정해 정부의 보이스피싱 근절 대책이 법률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문의한 상태다. 은행권은 무과실 배상 책임 법제화가 민법 중 기존 법률에 어긋나거나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행권 배상을 악용한 신종 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세부 기준이 아직 불투명해 향후 가이드라인 제시 여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은행들은 이미 보이스피싱 관련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은 보이스피싱 모니터링은 물론 보이스피싱 보상 보험을 출시하거나 가입을 유도하는 등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배상 책임까지 묻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무과실 피해액까지 배상하는 것은 은행권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지나친 조치라고 지적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를 들어 은행과 거래하면서 은행을 사칭해서 거래하는 분들 피해를 봤을 때는 은행이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을 속여서 피해를 봤다고 하면 은행이 자신의 고객이 사고가 났다는 측면에서 사고 조사를 하는 식으로 지원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은정 기자 viayou@sportsworldi.com
[보이스피싱의 그림자] 금융사 과실 없어도 피해 배상 법제화…은행권 "법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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