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피디가 되어 방송을 만든 지 25년이 지났다. 돌아보면 좋은 기억도 있고 돌아보기 싫은 시절도 있다. 영혼 없이 만든 프로그램도 있고 열정을 쏟아가며 만든 프로그램도 있다. 연출자가 되기 전 청취자로서는 주로 팝 전문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이문세의 '별밤(별이 빛나는 밤)' 대신 이수만의 '팝스투나잇'을 들었고 황인용이나 김광한의 프로그램도 애청했는데,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프로그램은 심야 방송이었다. 진행자는 전영혁.
영화사와 출판사에서 잠깐 근무하다가 라디오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는 폭과 깊이에서 당시 우리나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지식을 바탕으로 팝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로 데뷔했다. 대중적 인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철저하게 음악성 위주 선곡을 고집한 탓에 청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보니 1986년 4월 29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25시의 데이트', '음악 세계' 등등 프로그램 제목은 계속 바뀌어도 시간대는 늘 심야였다. 그래도 음악 좀 듣는다는 청춘들은 소중한 잠을 줄여가며 전영혁의 방송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2007년 방송을 그만둘 때까지 그는 분명 심야 방송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전영혁이 소수의 마니아를 거느렸다면 그 대척점에 정지영이 있다. 심야 시간대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진행자로, 그녀가 진행했던 프로그램 '스위트 뮤직 박스'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선곡을 지향했다. 영화음악 전문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정은임 아나운서도 있다. 방송 기간도 짧았고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밤하늘의 별이 된 그녀였기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래서인지 30년이 넘은 예전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는 앱도 만들어져 있다. 역시 하늘의 별이 된 마왕 신해철 역시 심야 라디오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이제는 낮이고 밤이고 즐길 거리가 너무나도 많아졌다.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 등등 손만 까딱하면 외로움과 지루함을 밀어낼 수 있다. 지상파 방송 전체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원래 시장이 크지 않았던 라디오 심야 시간대는 존폐를 논하는 수준으로 몰렸다. 이미 대부분 라디오 방송국에서 자정 이후에는 따로 진행자를 두지 않고 음악만 자동으로 내보내거나 재방송을 편성하고 있다.
정해진 수순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내가 몸담은 SBS 라디오에서는 심야방송을 직접 만든다. 나를 비롯한 몇몇 피디들이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직접 진행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늦은 밤까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심야방송반'이라고 프로그램 이름을 붙였다.
우리는 그 옛날 심야 방송 황금기를 재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경쟁할 만큼 무모하지도 않다. 언젠가 이런 노력조차 허락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기에, 그저 작은 성 하나를 지키고 싶을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2세'에 나오는 독백처럼 말이다.
"슬픔만은 그 누구도 나에게서 뺏을 수 없어. 왕관과 왕국을 가져가더라도 말이야. 내가 더 이 나라의 왕은 아닐지라도 나는 여전히 슬픔의 왕이야."
방송만은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뺏을 수 없다. 광고와 제작비가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라디오가 더 대세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방송을 만든다. 낮에도 밤에도 깊고 푸른 새벽에도. 아직 심야 방송은 살아있다.
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