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3500억달러 투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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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3500억달러 투자의 조건

한미가 관세 협상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대 쟁점인 조달 방식에서 미국은 3500억달러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한국은 원금 회수 위험이 낮은 간접 투자 방식의 대출·보증 위주를 주장하며 협상 교착이 길어지고 있다. 투자처 결정권이나 수익 배분 권한도 모두 미국이 가져가겠다고 한다.


3500억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3500억달러는 우리 외환보유액의 84%에 달한다. 미국 요구대로 이 돈을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3년 임기 내 투자할 경우 한 해 평균 1160억달러가 넘는 외화 자금이 필요하다. 우리가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연간 200억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외환보유액을 미국 주머니에 한 번에 털어 넣으면 외환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외환보유액은 비상시 시장 안정을 위해 독자적으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외화 비상금이지, 국가 간 대규모 투자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적정 수준에도 미달한다.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달러 마이너스통장 꺼내 쓰듯 원화를 담보로 달러를 빌려 쓸 수만 있다면 또 모를 일이다. 위기 시에만 제한적으로 공급받던 달러를 대미 투자 과정에서 필요시 상시로 공급받을 수 있게 하는 거다. 짧아도 몇 년 길게는 수십년씩 이어질 투자 자금 조달에 적합하기 위해서는 미 연준이 법률상 책무를 뛰어넘어 투자 지원 방식의 스와프를 용인해줘야 하고, 1~3개월로 짧은 만기를 장기 투자 재원으로 쓸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 미국이 우리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지만, 받는다고 해도 통화스와프 하나로 모든 문제가 풀리진 않는다.


미국 요구대로 한국이 일방적으로 자금만 대고 투자처 결정권이나 이익 배분 권한을 박탈당하는 구조라면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실상 3500억달러를 주고 무제한 통화스와프만 사오는 셈이다.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투자금이 집행되고 원리금 회수가 한없이 늘어지면서 외화 유동성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달러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국에 지속해서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스와프 라인 개설과 함께 투자 구조에서 직접 투자 비율을 낮추고 대출·보증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미국이 계속해서 전액 선불을 고집한다면 양측 모두 패자가 되는 극단적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협상 교착이 길어지는 건 미국에도 유리하지 않다. 최대 협상자인 중국과 무역전쟁 장기전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한국을 상대로만 전력을 쏟을 수는 없는데다, 다가오는 중간선거 정치일정을 고려하면 동맹국과 전선을 넓혀가며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는 건 큰 부담이다. 미국이 손을 벌리고 있는 조선업 협력 등 양측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결국 어느 포인트에선가는 디테일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큰 틀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의 합의가 진행될 수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대내 업적으로 내세울 만한 카드를 내주면서 현금 투입 비율을 낮추고 투자 기한을 늘리는 등 세부 조항에서 실질적 손해는 최소화하는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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