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리뷰] 반복되는 미로 ‘8번 출구’, 단순하지만 몰입·공포 압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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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리뷰] 반복되는 미로 ‘8번 출구’, 단순하지만 몰입·공포 압도적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영화 8번 출구가 관객을 이야기가 아닌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8번 출구는 무한루프의 지하도에 갇혀 8번 출구를 찾아 ‘헤매는 남자(니노미야 카즈나리)’가 반복되는 통로 속 이상현상을 찾아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190만 회를 돌파한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갓난 아기가 울고, 이에 한 남자가 짜증을 터뜨리는 소란스러운 지하철 내부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이를 무시하고 이어폰을 끼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화면이 이어지면서 단숨에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익숙한 일상의 소음이 점차 사라지고, 그의 시야가 좁혀지며 관객 역시 그와 함께 낯선 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이야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이상현상이 없으면 직진, 있으면 뒤돌아가라.’ 이 짧은 문장이 영화 전체의 구조를 지탱한다. 주인공은 무한히 반복되는 지하도의 통로 속에서 단 하나의 탈출구를 찾아 나선다.

단순한 규칙이지만 그 안에 녹아든 긴장감은 놀랍도록 복잡하다. 처음엔 틀린 그림 찾기처럼 이전의 상황과 달라진 부분을 찾기만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주인공과 함께 이건 정상인가, 이상인가를 의심하게 된다. 지하도에 갇히기 전 통신 오류로 통화가 끊겼던 전 연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고 정상 같지만 이 공간에선 아니다. 외면해야 하는 상황이다.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흐르는 피나 갑자기 웃는 얼굴로 따라붙는 NPC 같은 ‘걷는 남자(코치 야마토)’ 등 섬뜩한 연출이 이미 공포 영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지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8번 출구에 가까워졌다가 다시 0번 출구로 되돌아온 주인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극의 긴장감을 극으로 끌어올린다.

놀라운 점은 원작의 동명 게임을 거의 완벽하게 실사화했다는 것이다. 하얀 타일이 깔린 차가운 지하 복도, 등장인물의 구도와 여백 등을 스크린 위에 정교하게 옮겨 놓았다.

다만 영화적 언어로 구현되면서 이야기는 풍성해졌다. 다섯 명 남짓되는 등장인물이 지하도라는 단조롭고 한정된 공간에서 여러 메시지를 던진다. 지하철에서 우는 아기로 인해 승객에게 욕을 먹는 아이 엄마를 외면한 주인공은 전 연인의 임신 소식을 듣고 아빠의 자격이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러다 지하도에서 만난 미스터리한 소년을 만나면서 희생과 책임감을 배우고, 아이로 인해 위로받으며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내면, 정신 상태가 공간의 이상현상과 맞물려 작동한다.

마치 프로그램된 존재처럼 절제된 표정으로 워킹만 하는 걷는 남자도 그만의 스토리가 있다. 원작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과 기괴한 표정으로 공포 요소의 하나처럼 비쳤지만, 그 역시 무한루프에 빠진 사람이었고 8번 출구를 찾아 헤맸다.

영화의 엔딩은 첫 장면에서 들려왔던 라벨의 볼레로가 다시금 울려 퍼지고, 처음과 같은 장면이 반복된다. 무한루프라는 소재에 걸맞는 도돌이표 엔딩이다. 소란스러운 지하철 속에 다시금 이어폰을 꽂는 주인공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8번 출구 포스터.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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