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대세’가 화제다. 지난 9월24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을 둘러싸고다. 긴 추석 연휴를 거치며 세를 불리다 개봉 18일 차인 10월11일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승기를 굳혔다. 18일까지 누적 관객은 213만1847명. 그 직전엔 8월22일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메가 히트가 있었다. 18일까지 누적 관객 545만1054명을 기록 중이며, 관객 수 기준 2025년 개봉작 2위다. 한편 11일 이후 ‘체인소 맨’이 단 한 번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친 날이 16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인 ‘극장판 주술회전: 희옥·옥절’이 가져갔었다. 극장판을 따로 만든 것도 아니라 TV판 ‘주술회전’ 2기 분량을 극장용으로 편집한 총집편에 불과했는데도 폭발적 초기 반응으로 18일 현재 일일 박스오피스 3위, 누적 관객 10만 명을 돌파한 상태다.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 대세’가 맞다. 심지어 ‘체인소 맨’은 주제가인 요네즈 켄시의 ‘Iris Out’ 동반 성공까지 이끌어, J팝 최초로 한국 유튜브 뮤직차트 1위를 달성하고 역시 J팝 최초 로 멜론 톱100 차트 10위권에 진입한 곡이 됐다. 이러니 국내 언론미디어가 들끓지 않을 수 없다. 한껏 풀 죽은 국내 극장가를 할리우드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형국인 데다, 그 위력으로 타 미디어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그런데 그에 대한 해석엔 기묘한 부분이 있다. 이제 일본 애니메이션도 한국서 주류 문화로 봐야 한다느니 아직 주류까진 아니라느니 하는 식의 논의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 논의는 사실 2년 전인 2023년에 끝났어야 옳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490만 명), ‘스즈메의 문단속’(559만 명),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1만 명) 등이 연속적으로 성공을 거둔 해 말이다.
그런데 왜 올해도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걸까. 어찌 보면 단순하다. 2023년 연속 히트한 위 세 편은 기성세대가 그 흥행을 이해하기 쉬운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를 통 해 1990년대부터 국내 인기가 탄탄한 IP였고, 미야자키 하야오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도 마찬가지다. 현 40~50대에도 친숙하다.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감독 신카이 마코토가 2007년 ‘초속 5센티미터’부터 2017년 ‘너의 이름은.’ 대박까지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던 터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주술회전’은 모두 2016년 이후 연재된 만화 바탕인 데다, 단일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어서 진입 장벽이 높았다. 쉽게, 애초 원작 만화 또는 그 TV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으면 택하기 힘든 콘텐츠였단 얘기다. 그렇게 진입 장벽 높은 콘텐츠가 수백만 관객을 넘기며 국내 극장가를 이끌고 있단 것. 그 기반인 TV 애니메이션이 그간 수면 아래서 착실히 팬덤을 쌓아 온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낯선 현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더 근본적으론, 앞서 언급한 ‘주류’ 개념 자체가 점차 허랑해지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근래 많은 언론미디어에서 언급되는 부분이며, 사실상 대중문화 전 분야 걸쳐 진행되는 현실이다. 콘텐츠 자체의 양적 폭발과 함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대중의 여가 취미와 취향이 극도로 세분화된 현실에서, 이제 기존 ‘대중’ 개념은 약화되고 ‘팬덤’만이 남게 되는 현실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흥행 1위 하는 영화, 음원차트 1위를 달리는 노래일지라도 팬이 아닌 이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늘어난다. ‘팬덤이 큰 것이 곧 대중성’에 가까워진단 얘기다.
그런데 이런 대전제 하에서라도 여전히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주술회전’ 등의 극장판 흥행 성공은 낯설단 반응이 많다. 그리고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 ‘수면 아래서’ 팬덤을 쌓아 왔단 전제 자체가 퍼뜩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한국만의 일도 아니고, 최근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어마어마한 흥행을 거둔 미국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미국의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웹사이트 아니메바이더넘버스의 2025년 6월6일자 기사 ‘닐슨에 따르면, 아무도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를 보지 않는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사는 글로벌 미디어리서치 회사 닐슨에서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OTT와 VOD 채널들 까지 포괄하는 2024년 통산 멀티플랫폼 시청률을 발표한 내용을 두고, 발표에서 연간 100위 내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 편도 들어가지 않은 점을 분석하고 있다. 18~45세만 추적한 세부 차트에서나 ‘단다단’ 등 일본 애니메이션을 찾아볼 수 있단 것. 그런데도 어떻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등이 기록적 흥행을 보일 수 있었는지 의아해지지만, 내막은 단순하다.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넷플릭스 등 일반 유료 OTT가 아니라 유료 가입자 1700만 명, 무료 가입자가 1억2000만 명에 이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전문 OTT 크런치롤 등으로 빠져나가 있단 것. 특히 크런치롤은 딱히 가입을 하지 않아도 일본서 방영된 TV 애니메이션을 1주일 뒤 볼 수 있어 큰 인기를 얻고 있고, 그 규모가 닐슨 같은 미디어리서치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렇게 플랫폼 자체가 특화돼 갈라지기 시작하니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는 이들도 두루 사용하는 넷플릭스 등 일반 OTT에선 일본 TV 애니메이션 인기를 확인하기가 힘들다. 애초 소비하는 ‘좌판’ 자체가 서로 달라 서로의 동향을 알 수 없으니, 막상 그 소비층 실체가 드러 나는 극장 등에서 파란을 일으킬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게 마련인 셈이다.
이처럼 국내 극장가 ‘일본 애니메이션 대세’는 생각보다 곱씹어볼 부분이 많은 이슈다. 특히 사실상 무료 플랫폼을 통해 값싸게 TV 애니메이션을 해외 배급한 뒤 ‘진짜 수익’은 그 극장판과 각종 굿즈 등을 통해 거둬들이는 일본 애니메이션계 전략 차원에서 그렇다. 정확히 한국의 K팝 전략과 같은 패턴이기 때문이다. K팝도 유튜브 등 플랫폼을 통해 무료로 노래와 뮤직비디오, 각종 자체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뒤 거기서 생성된 팬덤에 피지컬 음반이나 각종 음반, 공연 등 유료 상품들을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는 패턴을 고수하고 있다.
향후 이 같은 팬덤형 전략이 대중문화 전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리란 점에서 여러 힌트를 얻어볼 만하다. 극장 관람처럼 점차 대중적 문턱이 높아지는 여가에 있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